- 달콤한 유혹 ‘가향담배’의 두 얼굴

역한 냄새 줄여 젊은층 공략
시장점유율 3년 새 6.5배 ↑
캡슐 속 128종 중 86종 有害

멘톨, 신경 마비 중독성 높여
커피맛 속 카페인 기관지 확장
폐에 더 깊이 니코틴 흡수시켜

“가향 함유 표시 제한이 전부
편의주의 행정아니냐” 비판
궐련형 전자담배 이어 또 논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새내기 직장인 최모(여·23) 씨는 고교 시절 친구의 권유로 호기심에 담배를 시작했다. 최 씨는 일반담배는 특유의 역한 냄새가 싫어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만, ‘캡슐형 가향담배’는 거부감이 덜해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특히 필터 안에 숨어 있는 ‘멘톨(박하 맛이 나는 물질) 캡슐’이 터질 때마다 느껴지는 청량감이 좋아 지금은 하루 반 갑 정도 애용하는 ‘골초’가 됐다. ‘가향(佳香)’은 ‘좋은 향기’를 뜻한다. 가향담배는 담배 특유의 독하고 매캐한 향 대신, 특정한 맛(멘톨·설탕·커피·코코아)과 향이 나도록 설탕, 감미료(포도당·당밀·벌꿀 등), 멘톨, 바닐린, 계피 등을 첨가해 인위적으로 거부감을 없앤 제품이다. 문제는 이런 가향담배가 젊은층을 신규 흡연자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가향담배가 많은 아동과 젊은 성인층을 정기 흡연자가 되도록 하는 관문(gateway)”이라고 평가했다.

◇‘좋은 향’ 내뿜으며 몸집 키우는 가향담배 중독성 논란=가향담배가 특히 ‘여성’과 ‘젊은층’을 공략하고자 만들어진 만큼, 그 달콤한 유혹을 찾는 손길은 해마다 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캡슐형 가향담배’가 처음 출시된 2012년에만 해도 시장점유율이 2.3%(9800만 갑)에 그쳤다. 한 자릿수 초반이던 점유율은 2013년 4.5%(1억9300만 갑), 2014년 9.5%(4억1500만 갑), 2015년에는 15.0%(4억8700만 갑)를 기록했다. 3년 사이 점유율이 6.5배로 뛰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지난 2월 보고서를 통해 가향담배의 유해성을 지적했다. 개발원에 따르면, 담배에 포함된 가향물질은 담배의 맛을 개선하는 것뿐만 아니라 중독을 심화시키고 독성을 강화해 흡연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지혜 선임연구원은 “대표적인 가향물질인 멘톨은 말단 신경을 마비시켜 담배연기를 흡입할 때 느껴지는 자극을 감소시켜 중독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특히 ‘캡슐형 가향담배’는 캡슐이 포함되지 않은 가향담배보다 더 많은 양의 가향물질을 포함하고 있으며, 캡슐이 터지면서 필터의 기능을 상실해 유해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희진 연세대 교수팀은 가향담배로 처음 흡연을 시도한 경우 일반담배로 흡연을 시도한 사람에 비해 지속적인 흡연자로 남을 확률이 1.4배 높다고 발표했다. 가향담배의 중독성이 일반담배보다 훨씬 강하다는 점이 연구 결과로 드러난 것이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국내에서 시판 중인 캡슐형 가향담배에 대해 성분 분석을 한 결과에서도 유해성이 지적됐다. 분석 결과에서 33종의 담배 캡슐에서 128종의 물질이 검출됐는데 이 중 조회 가능한 99종의 성분 중에서 86종이 유해성분으로 확인됐다. 연구에 참여한 신호상 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는 “가향담배는 유해물질들을 더 깊이 우리 몸에 들어가게 하는 역할을 해 유해성을 더 높인다”고 설명했다.

◇규제당국은 국민건강증진보다 담뱃세에만 눈독=정부가 담뱃세를 인상할 때마다 내세우는 핵심 논리는 국민의 건강증진인데 최근 규제 조치는 이와 배치된다. 위해성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향담배에 대해서는 가향물질에 대한 규제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담뱃세 인상 여력이 남아 있는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규제에만 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다. 가향담배는 일반담배와 같은 담뱃세가 부과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판매가 자유롭다. 규제의 기준이 국민건강에 대한 위해성, 담배의 유독성 여부가 아니라 국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규제의 형평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배경이다.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기존 일반담배의 90% 수준으로 올리는 내용의 ‘개별소비세 일부개정안’을 상정 처리했다. 앞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가격 인상이 이뤄지게 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담배에 붙는 세금은 일종의 죄악세(sin tax)로 중과세하고 있다”며 “전자담배의 건강 위해도가 낮아 일반담배보다 세율을 낮게 하자는 것에 대한 근거가 불명확하므로 전자담배도 일반담배와 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게 낫다고 본다”고 밝혔다.

최근 논쟁의 중심에 선 궐련형 전자담배는 전자기기를 이용해 연초 고형물을 고열로 가열해 니코틴 증기를 흡입하는 방식으로, 일반담배처럼 궐련(종이로 연초를 말아서 만든 담배)을 쓴다는 점에서 지난 5월 출시 이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궐련형 전자담배는 일반담배를 태울 때 발생하는 ‘담뱃재, 타르, 탄소’가 배출되지 않아 일반담배보다 덜 유해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국회 기재위 소속 유승민(바른정당) 의원은 “일반담배보다 전자담배의 유해성이 낮아 세율을 낮게 해야 한다는 게 많은 국민의 의견”이라며 “건강 유해성 조사 결과가 나오면 그때 가서 세율을 올려도 된다”고 주장했다.

세종시에 사는 직장인 한모(47) 씨는 “일반담배가 갈수록 덜 팔리는 상황에서 담뱃세를 유지하기 위해 애꿎은 전자담배만 건드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향물질을 담배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규제는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른 ‘가향물질 함유 표시 제한’ 정도가 전부다.

이해완 기자 paras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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