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삶에 이유가 있듯이
승선한 모든 사람이 주인공
배침몰 원인 싸고 서로 네탓
인간의 민낯 그대로 보여줘
1인 多役… 10초안에 변신
헤어·의상 도우미 4명붙어”
뮤지컬 ‘타이타닉’에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케이트 윈즐릿’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동명의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타이타닉호 3등실에 탑승한 가난한 화가 잭(디캐프리오)과 상류층의 1등실 승객 로즈(윈즐릿)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남녀주인공의 사랑’이라는 주제는 이 뮤지컬에서 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로 대체된다. 1912년 ‘꿈의 배’로 출항했던 실제 타이타닉호에는 사회적 지위도 재산도 다른 승객들이 1~3등실에 가득 차 있었고, 뮤지컬 타이타닉은 이들 개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다른 대극장 뮤지컬 작품과 달리 주인공과 엑스트라의 구분도 없다. 1997년 개봉한 영화보다 먼저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던 작품은 20년 만에 한국판 라이선스 뮤지컬로 지난 10일 서울 샤롯데시어터에서 첫선을 보였다.
1등실 승객인 타이타닉호 소유주 브루스 이스메이(이희정)와 상류층의 화려한 삶을 동경하는 2등실 승객 앨리스 빈(윤공주), 미국에서 메이드가 되기를 꿈꾸는 3등실 승객 케이트 맥고원(이지수)은 각 객실을 대표하는 승객이다. 연출가 에릭 셰퍼와 안무가 매슈 가디너는 등장인물이 사회적 계급에 따라 다르게 움직이도록 행동 규칙을 만들고 표정, 의상 등에서 디테일한 차이를 더했다. 1인 다(多)역이 기본인 이 작품에서 이지수는 “1등실 와이드너 부인 역으로 등장할 때는 늘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우아하면서도 날 선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하지만, 3등실 승객 맥고원으로 돌아오면 동작이 크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전환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연 중 계속 역할이 바뀌는 탓에 “헤어 도우미 2명, 의상 도우미 2명 등 총 4명이 붙어 10~12초 안에 저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인물로 변신시킨다”고 귀띔했다. 무대 역시 선실의 격차를 드러낼 수 있도록 여러 개의 층계로 구성됐다.
인물 간의 분명한 차이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은 배가 빙산에 부딪혀 가라앉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배 지하실에 구멍이 뚫려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자 1등실 승객부터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배의 소유주인 이스메이와 설계자인 토머스 앤드루스, 선장인 에드워드 스미스가 배 침몰의 원인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전부 네 탓”이라고 삼중창을 부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어 이희정은 “침몰하는 배 안의 인물들이 다 같이 ‘신이여 도와주소서’라는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은 인간이 오만하게 굴어도 결국 신 앞에 똑같은 존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거대한 비극이 저마다의 사회적 계급과 재산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한 존재라는 점을 상기시킨다는 것.
다만 작품 속에서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다 보니, 주인공 위주의 속도감 있는 서사에 익숙했던 관객들에게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윤공주는 “현재 한국 뮤지컬 계에 남자주인공 위주의 작품이 99%라는 점에서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동일한 비중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이 모험이 될 수도 있다”면서도 “각자의 삶에 이유가 있는 것처럼 타이타닉호에 승선한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며, 몇몇 주인공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라고 말했다. 이희정은 “커튼콜에서조차 배우들이 정해진 순서대로 인사하지 않고, 각자 자기 위치에서 동시에 노래를 부르는 것도 이러한 작품의 의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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