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위기설은 왜 끊이지 않는 걸까? 그 이유를 알려면 바나나를 바로 이해해야 한다.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다. 파초과에 속하는 큰 풀이다. 뿌리(알줄기)를 잘라 옮겨심기만 하면 열매(바나나)가 열린다. 처음 열매를 맺기까지 9개월가량 소요되며 6개월마다 재수확이 가능하다. 바나나 농장에선 열매를 수확한 후 바로 베어버린다. 바나나가 한번 열린 알줄기에선 다시 열매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씨가 없는 바나나는 대부분 유전적 동질성을 지닌다.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하면 환경 변화나 전염병에 대한 대처 능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바나나가 병충해가 돌면 일시에 전멸할 수 있는 ‘약골’ 식물로 평가되는 것은 그래서다.
실제 사례가 있다. 1950년대까진 ‘그로 미셸(Gros Michel)’이란 품종이 바나나의 주를 이뤘다. 별명이 ‘빅 마이크(Big Mike)’였던 그로 미셸은 맛과 향이 진한 데다 껍질이 두꺼워 상품성이 높았다. 파나마병이 유행하면서 그로 미셸은 순식간에 최후를 맞는다. 푸사륨이란 곰팡이가 일으키는 파나마병은 ‘바나나 암’으로 통한다. 그만큼 바나나에는 치명적이다. 이 병에 걸리면 잎이 갈색으로 변한 후 말라죽는다. 그로 미셸은 파나마병에 저항성이 없어 집단 폐사했고, 1965년 세계 무역 품목에서 제외됐다. 다행히도 1960년대 중반, 파나마병에 잘 견디는 ‘캐번디시(Cavendish)’ 품종이 개발됐다. 그로 미셸보다 크기가 작고 맛과 향도 떨어졌지만 대안이 없어 금세 각광받았다. 캐번디시는 빠르게 그로 미셸의 빈자리를 차지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댄 쾨펠은 저서인 ‘바나나―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에서 “인도엔 약 600종의 바나나 품종이 있었지만 지난 20년간 캐번디시가 거의 휩쓸었다”고 기술했다. 현재 캐번디시는 전 세계 바나나 생산의 47%를 차지하고 있다.
캐번디시가 요즘 위기에 처해 있다. 1980년대 대만에서 캐번디시가 변종 파나마병으로 말라죽기 시작한 것이 불길한 전조였다. 대만 캐번디시의 70%가 죽었다. 변종 파나마병은 중국·인도·호주 등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파나마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는 곰팡이 살균제·훈증제 등 농약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변종 파나마병에도 견디는 새 품종을 개발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할 수 있지만, 신품종 바나나를 얻기란 매우 어렵다. 씨가 없는 바나나는 불임(不姙)의 과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바나나겟돈’의 구세주로, GMO 기술이 떠올랐다. 파나마병에 저항성을 가진 피망의 유전자를 삽입한 신품종 GM 바나나가 개발됐고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포장 시험이 이미 시작됐다. 쾨펠은 “바나나는 7000년 전 인류가 경작한 최초의 농작물이자 수렵·채집 생활에서 농경·정착 생활로 전환시킨 과일”이라고 했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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