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지난 9년 동안 정보·국방을 담당한 수장(首長) 대부분이 중범죄자로 몰린 참담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14일 남재준·이병호, 15일에는 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의 청와대 전달과 관련해 국고 손실, 뇌물 공여, 업무상 횡령, 직권남용 등의 죄목이 적용됐다. 앞서 이명박 정부에서 4년간 국정원장을 지낸 원세훈 전 원장은 사이버 댓글 공작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지난 11일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합참의장, 이·박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과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관진 전 장관이 사이버사령부 댓글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고, 김장수 전 안보실장도 출국금지 상태라고 한다.

실정법 위반에 대한 합당한 처벌은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 수사는 과거 5·16 이후의 구체제 제거 수사나, 5·18 직후의 반대세력 척결 수사에 비견할 만큼 ‘혁명적’이다. 우선, 불구속 수사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의문이다. 국정원 특활비의 경우,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이 사실관계를 자백했고, 3명의 국정원장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로 전달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노 정부 등 역대 정권에서도 있었던 유사한 관행이나 사건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지나치게 과격한 접근이다. 더욱이 이들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운 경우도 없다. 현 수사팀에 이런 원칙과 맥락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검찰의 정치 중립도 다시 의심 받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적폐 청산과 개혁은 사정(司正)이 아니라 관행의 혁신”이라고 말했고, 청와대 측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법·제도·예산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강조한 것”이라는 배경 설명을 했다. 정치보복이나 인적 청산이 목표가 아니라, 악습 타파와 시스템 개선을 지향한다는 인식은 합당하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정반대이며, 심각한 안보 자해(自害)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정보·안보 최고 당국자들이 정권이 바뀌면 줄줄이 처벌받는 상황에서 민감한 정보 수집이나 타국과 심층적 정보 교류는 불가능하다. 때로는 합법과 비법(非法) 사이의 위험지대에서 활동하는 국정원의 기능이 사실상 해체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북한 정권이 얼마나 춤을 추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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