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할머니께.
할머니, 안녕하세요. 할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손자 성현입니다. 세 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파트에서 살았던 제가 낯선 섬에 떨어져 할머니 품에 들어간 지도 벌써 10여 년이 지났어요. 이제 고등학생이 된 지금 그 낯선 섬은 추억이 깃든 고향 연평도가 되었고, 저의 보호자는 이제 어머니 아버지가 아닌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많은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 당시 어린 저로서는 이런 모든 것들이 전부 두렵게만 느껴졌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할머니께서는 저에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사랑을 주셨습니다. 어릴 때 많이 먹어야 쑥쑥 큰다며 고기, 계란, 김치찌개 등등 매끼 진수성찬을 차려 주셨고, 그 결과 초등학교 3학년 때, 60㎏이나 되는 고도 비만이 되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만큼 할머니께서 저를 위해 과분할 정도의 사랑을 주셨고, 이제는 그 사랑으로 과거의 아픔 따위 툴툴 털어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0년 11월 23일, 북방한계선 너머에서 날아든 포탄이 우리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던 그날, 저는 그때 할머니의 간절한 목소리와 눈물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 속에서도 대피소 밖으로 뛰쳐나가려 하시면서 “성현이 찾으러 가야 돼! 성현이 어디 있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고 말리는 군인들을 뿌리치셨죠. 다행히 저는 안전하게 대피소로 이동한 상황이었고 저를 보셨던 할머니께서는 아까의 절박함은 온데간데없이 감추시고 행여나 어린 제가 놀라 상처가 되진 않았을까 세상 그 누구보다 편안한 말투로 안심시켜 주셨던 그때를 기억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할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기는커녕 저의 사춘기 때의 혼란한 마음을 할머니께 다 표출한 것 같아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할머니, 저는 친구나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입에 담지 못할 모진 말들로 할머니께 화풀이했습니다. 할머니께 반말하는 건 기본이었고 할머니께서 무슨 일 있느냐고 물으실 때 저는 할머니는 몰라도 된다며 짜증 섞인 말투로 일관했죠. 그뿐인가요. 할머니께서 감기몸살로 심하게 앓아 누우셨을 때 할머니 먹을 것 사오라고 주신 돈을 제 개인 일에 다 써버리고 나 몰라라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힘드셨나요? 저는 편하다는 이유로, 사춘기라는 이유로 세상 하나뿐인 내 편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그때의 저를 용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때를 생각하면 항상 죄송한 마음이 밀려옵니다.
할머니, 저는 편지를 쓰면서 문득 수업시간에 ‘빈 둥지 증후군’에 대해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자녀가 독립하여 집을 떠난 뒤에 부모나 양육자가 경험하는 슬픔, 외로움과 상실감을 뜻하는 것이죠. 저는 이제 3년 후에 대학에 입학해 할머니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할머니가 주신 사랑을 머금은 채 훌륭한 성인이 돼 세상을 향해 날갯짓하는 시기, 많은 사람은 이 시기가 젊음과 청춘을 만끽하는 황금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에겐 황금기인 그 시간이 할머니껜 빈 둥지가 되어 돌아온다면 이것은 가슴 아픈 이야기겠죠.
할머니, 이제 저는 할머니가 주신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는 성현이가 될 것입니다. 설사 할머니 곁을 떠나게 되더라도 항상 할머니의 사랑을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할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문화일보 후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주최 '고맙습니다, 선생님' 감사편지 쓰기 공모전 수상작.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