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귀족과 자유인, 그리고 노예가 있었다. 자유인과 노예의 차이는, 자유인은 백수이고 노예는 정규직이라는 것이다.”(고미숙) 고미숙은 “지금 사람들이 추구하는 건 돈과 정규직”이라며 “노예의 삶이 그토록 그립단 말인가?” 하고 질타한다. 그러나 노예라는 한국 기업의 정규직이 보기에 따라서는 기업 오너보다 걱정이 덜한 직업임은 사실 아닌가. 지금 우리 사회에선 노예가 되기 위한 거대한 투쟁이 불붙고 있다.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0)’ 정책은 민간기업이라면 완전히 틀렸다. 우선, 외국 회사에 근무해 보라. 회사 직원 대부분이 계약 조건이 각기 다른 비정규직 직원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우리는 이미 정규직이 소멸하는 시대에 진입했다. 시대를 거스르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경쟁 없는 직장인 공무원이나 공기업에선 아직도 유효할 수 있으나 예산이 문제다. 9급직 아래 처우가 형편없는 10급 직원으로 채용하는 꼼수도 부려 보지만 꼼수는 당연히 오래갈 수 없다. 전체로 보면 2017년 481조1000억 원인 공공기관 부채는 2020년엔 501조3000억 원, 2021년엔 51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도 버틸 수 없는 것이다.

비정규직 제로(0) 정책은 그 자체로는 매우 인간적이며 심지어 정의롭게 보인다. 비정규직의 일종으로 월급 수준, 수당의 종류와 액수, 복지 혜택, 연금 등에서 정규직에 비해 매우 열등한 대우를 받는 무기계약직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결코 승진이라는 것이 없고 봉급도 일정 수준을 넘을 수 없다. 처음부터 계약이 그랬고, 그래서 채용도 비교적 쉽게 결정됐다고 하더라도 날이 갈수록 불만이 쌓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향상이 없는 삶 자체가 저주일지 모른다. 그래서 서울교통공사 무기계약직 직원들은 ‘차별 없는 정규직화’를 외치며 생존을 위한 농성에 들어갔다. 그 눈물을 닦아 줘야 한다.

그러나 정규직도 할 말이 많다. 각고의 노력으로 온갖 자격증 따고 수년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 공부하고 시험 보아 당당하게 합격한 사람과, 간단히 면접만 보고 입사한 사람을 똑같이 대접한다면 이건 공정한 것도, 평등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사무장은 “내가 변호사를 먹여 살린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 사실만으로 사무장에게 변호사 자격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면 사회 기반이 무너진다.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노조는 성명을 내고 “공공기관 채용은 공개 채용이 원칙”이라며 “비정규직 일괄 정규직 전환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우리나라의 정규직은 근로자이지만 약자는 아니다. 제도권에 들어와 강력한 조직과 힘을 가진 권력이다. 현 정부 들어 제도권 노동은 정부에 지분까지 있다고들 말한다. 그러므로 항간의 노노(勞勞) 갈등은 약자끼리의 투쟁이 아니다. 진짜 약자는 비정규직뿐이다. 비정규직도 달콤한 제도권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정규직의 삶에도 희망을 주는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

평생을, 아무리 일 잘해도 결코 나아질 수 없는 사다리 없는 사회 구조가 문제다. ‘닥치고 정규직!’은 갈등만 부른다. 너무 성급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두꺼운 장벽을 허무는 것이 급선무다. 정규직 과보호에 빠진 현 노동시장은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 패자 부활의 통로를 다양하게 만들어 정규직으로 승격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진정 화합할 수 있는 길이다. 공공기관부터 시행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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