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하나가 이토록 많은 이야기와 행복을 가져다준다. 지난해 채 익기도 전에 모과 하나를 골프장에서 땄다가 캐디에게 혼난 적이 있다. “모과는 서리를 맞지 않으면 향기도 나지 않고, 모과차로도 쓸 수 없어요. 성급하면 자연이 노해요”라고 말했던 그 캐디로부터 작은 기다림을 배웠다. 늦가을 함께한 지인이 라운드 중에 머리만 한 모과를 내밀었다. 모과나무 밑에서, 하도 예뻐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처음엔 자동차에 둘 요량으로 가져왔는데 모과차로 만들어서 그것도 한 달 후에 마실 생각을 하니 기다림의 행복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생각해 본다. 모과 하나가 30년 전의 다방과 겨울, 눈, 아다모의 노래까지 기억하게 해줬다. 모과 하나가 서리를 맞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자연법칙’도 알려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골퍼는 골프장을 가면 성적 좇기에 여념이 없다. 옆에 아름다운 단풍이 들었는지, 숲에서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지에 대한 자연감이 없다. 휘 둘러보면 골프장의 자연은 참 많은 것을 품고 있다. 잠깐 멈춰 시선을 주면 자연은 내게 와서 향기로, 씨앗으로 발아하려고 한다. 라운드 후에 골프장의 꽃이며, 나무와 새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런 게 있었나?’하는 표정뿐이다. 골프는 연애하는 것처럼 라운드해야 한다. 새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꽃이 한들거리는 모습을 사랑으로 바라보면 그렇게 간과할 수 없다.
자연은 우리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부터 손’까지라고 한다. 이행하지 않으면 우리에 다가오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유대경전에 ‘겨울날 내린 눈을 밟고 걸어가면 승자이고 눈이 녹기를 기다리면 패자’라는 말이 있다. 골프장에 가면 골프성적에만 연연하지 말고 눈길을 돌려 나만의 자연, 스토리 텔링을 만들어 오면 어떨까. 한 달 후에 잘 익은 모과차 향기가 벌써 기다려진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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