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최근에 4차 산업혁명이 국가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4차 산업혁명은 부인하기 어려운 추세이며, 이러한 추세를 선도하기 위해 글로벌 생태계 경쟁이 이미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정치적인 화두로 접근하는 사이에 미국과 중국은 주요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을 중심으로 생태계 경쟁을 공격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즉, 미국의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중국의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관련 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플랫폼을 확보하고 핵심 정보를 장악함으로써 기업의 가치를 올리며 상승한 가치를 무기로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추진해 생태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 기업들은 세계에서 기업 가치가 가장 높은 기업 순위에서 대부분 10위 안에 포함됐다.

사람들의 디지털 삶도 이들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 사람들은 구글로 검색, 아마존으로 쇼핑하고 소셜미디어로는 페이스북을 사용한다. 영상은 대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통해 소비하는데 단말기는 애플 스마트폰을 선호한다. 이미 미국의 ICT 기업들이 유럽의 시장을 장악했기에 유럽이 미국의 디지털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뼈아픈 반성이 나오지만 특별한 대책은 없다.

우리나라도 웹 2.0의 대명사였던 싸이월드는 이미 페이스북에 그 자리를 내줬고, 동영상 시장에서는 유튜브가 대세가 됐다. 우리 기업이 만드는 스마트폰 하드웨어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구글이나 애플이 제공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국민은 구글 플레이나 애플 앱스토어에서 앱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검색 시장은 네이버가, 메신저 시장은 카카오톡이, 그리고 오피스 시장은 아래아한글이 방어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200여 개국 중에서 자국의 언어로 된 검색 엔진이 시장을 지키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과 중국, 러시아 정도다. 자국의 언어로 된 메신저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국가도 마찬가지이며, 자국의 언어로 된 워드프로세서로 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국가 역시 소수일 것이다. 결국, 디지털 전쟁에서 싸우는 군사에 해당하는 자국의 기업이 독자적인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자국 시장을 방어하지 않는다면 외국 ICT 기업의 디지털 식민지로 전락할 건 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글로벌 생태계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생태계 전쟁에서 군사 역할을 담당하는 기업을 육성하되 주축 기업으로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성하고 다른 기업들과 상생할 수 있는 대형 플랫폼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국가적으로 강조하면서 그나마 글로벌 ICT 기업들로부터 국내 시장을 방어하고 해외시장을 공략해 온 네이버, 카카오 등의 핵심 기업을 규제하고 정치적으로 반기업 정서를 확산시키는 것은 모순이다. 국내 시장에서 글로벌 ICT 기업들에 비해 국내 기업이 규제 측면에서 역차별을 받는 것도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물론 시장에서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를 하거나 반윤리적인 경영을 하는 기업은 단호하게 규제하고 징벌해야 한다. 아직은 미흡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부도덕한 기업인은 미워해도 글로벌 생태계 경쟁에서 경제 주권, 정보 주권을 방어하고 해외 시장을 개척할 기업은 보호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디지털 식민지가 되느냐, 아니면 디지털 강국으로 다시 도약하느냐는 생태계 경쟁에서 생존하고 성장할 기업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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