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용 논설위원

文정부에서도 ‘금융홀대론’ 등장
官治·政治·勞治·市治·눈치 극성
낙하산도 ‘손 안 대고 코 푸는 식’

연금공단 이사장 낙하산 흑역사
금융, 긴축期에 ‘호랑이’로 돌변
금융사 자율성·독립성 보장해야


진보든, 보수든 새 정권이 들어서면 늘 ‘금융 홀대론’이 등장한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전직 경제부처 차관이 사무관 시절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며 들려준 ‘누나와 동생’ 얘기다. ‘젊은이들이 가난을 떨쳐보겠다며 서울로 몰려갔던 1970년대 무렵 중학교만 나온 누나가 공장에서 돈을 벌어 동생 학비를 대주는 경우가 흔했다. 그 희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동생은 출세 가도를 달렸다. 한데, 그런 동생 중 나중에 누나를 무식하다고 무시하는 경우도 적잖았다. 한국 금융 처지가 딱 그 꼴이다.’ 금융 지원 덕에 쑥쑥 자란 제조업이 동생, 이들을 보살피느라 쪼그라든 금융이 누나라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외려 더 심해졌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관치(官治)·정치(政治)에 노조·시민단체가 금융사 경영에 개입하려는 노치(勞治)·시치(市治)까지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청와대 심사(心思)까지 헤아리려는 금융사의 ‘눈치’도 더해져 “금융이 ‘5치’에 휘청댄다”는 비아냥 섞인 장탄식마저 나온다.

낙하산 인사 수법도 교묘하다. 과거엔 민간부문은 제 발로 나가지 않으면 검·경을 동원해 바닥까지 탈탈 털어 내보냈다. 문 정부는 채용 비리라는 ‘절대 악’을 앞세워 국민 다수의 공분을 사게 한 뒤 백기 투항하게 만들거나 노조·시민단체의 힘을 얻어 CEO를 흔들어댄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식이다.

일련의 정황을 짚어보자. 우선, 정책의 정치화가 노골적이다. ‘포용적 금융’을 한답시고 금융사의 ‘기본영업’에 관여하는 일이 다반사다. 실손 의료보험료와 카드가맹점 수수료 인하, 대출금리 인하 압박 등이 단적인 예다. 서민 보호라는 선의는 이해하지만 명백한 가격 개입이요, 경영 간섭이다. ‘관치금융의 수족’ 낙하산인사의 서곡은 민간단체인 손해보험협회에서 울렸다. 회장으로 선출된 김용덕 전 금감위원장은 관료 출신이지만 문재인 대선캠프 정책자문단 ‘10년의 힘’ 멤버인 폴리크라트(정치관료)다. 금융협회의 맏형인 차기 은행연합회장에도 정치관료가 낙점됐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김성주 전 민주당 의원을 투하한 건 ‘낙하산 흑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다. 국민 노후자금 600조 원 운용엔 공공성보다 수익성·안정성이 먼저다. 금융·재정 전문가 등이 수장을 맡아온 이유다. 특히 연금공단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손이다. 국제금융계 거물인 씨티그룹 회장 등이 방한하면 대통령은 안 만나도 이사장 사무실엔 꼭 들르려 한다. 그런 자리에 관련 경력이라곤 국회 보건복지위 활동이 전부인 인사를 앉혔다. 벌써 그 ‘본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늘 열린 KB금융 주총에서 최대 주주 자격으로 노동이사제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연금공단 임원추천위에도 민주노총 출신 2명을 영입했다. 국민연금을 복지재원으로 쓰려는 게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

KB금융 흔들기는 ‘5치’의 결정판이다. 윤종규 회장은 9년 만에 리딩뱅크 자리를 탈환한 성과에 힘입어 오늘 연임이 확정됐다. 하지만 경영진의 마음은 편치 않다. ‘노치·시치’ 리스크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따놓은 당상’을 놓친 청와대 심기가 불편하다는 소리도 나온다. 그렇다면 그 뒤끝은 머리 위에 이고 살아야 할 북핵 같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채용 비리로 물러난 우리은행장 후임 인선에도 관치 망령이 어른댄다.

금융은 경제의 혈맥이다. 막히면 경제는 죽는다. 위험산업이기도 하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글로벌 긴축기(期)엔 금융은 언제든지 호랑이로 돌변할 수 있다. 금융산업이 살려면 금융사의 전문성과 효율성,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3류인 한국 금융을 구해내기 위해 악폐인 관치의 사슬을 잘라내야 한다. 적폐 청산의 선봉임을 자임하는 문 정부가 최적임자다. 순혈주의에 얽매인 채 전당포 식 영업에 안주하는 은행들의 맹성(猛省)도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문 정부의 실세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3년 전 한 보수 신문에 실은 글 일부다. ‘금융사를 정권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개과천선을 기대할 순 없다. 금융사는 주주가 주인이다. 특히 기관투자가들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저급한 관치가 우리의 소중한 금융사를 망가뜨린다. 이래서는 한국 금융의 미래가 없다’. 구구절절 옳은 지적이다. 김 위원장의 문 정부 관치금융 관전평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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