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영 워싱턴 특파원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올해도 한국의 ‘불용액’ 공공외교가 되살아나고 있다. ‘불용액’이란 정부 부처가 사업 예산을 책정해놓았다가 회계연도에 다 사용하지 못하면 회수되는 금액으로, 다음 회계연도에 관련 예산 삭감으로 이어진다. 각 부처는 ‘불용액’을 없애기 위해 연말에 대거 예산을 집행하는데, 공공외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올 연말에도 어김없이 한국 관련 행사가 워싱턴에서 대거 열리는 이유다.

‘불용액’ 공공외교의 최대 단점은 ‘졸속’ 행정이다. 지난 8일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워싱턴의 보수적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과 공동 주최한 ‘트럼프 행정부와 한·미 동맹의 미래’ 세미나가 대표적 사례다. 일주일 앞두고서야 행사가 공지되다 보니 참석률은 극히 저조했다. 객석의 절반이 겨우 채워졌고, 그나마도 절반 이상이 이른바 ‘검은 머리’의 한국계 인사나 직·간접적으로 한국과 연계된 인사들이었다. 발표자로 무대에 오른 KIDA 관계자의 경우 명확하지 않은 영어도 문제였지만, 내용 자체도 귀에 쏙 들어오는 게 하나도 없었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용액’ 소진을 위해 급하게 행사가 치러졌기 때문이었다. 반면 워싱턴의 민간단체가 지난 10월 말 의회 건물에서 개최한 한·미 원자력 협력 행사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참석자 대다수가 의회 관계자나 에너지 관련 인사였다. 질문도 쏟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워싱턴의 주류 사회가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에너지가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청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 명확한 타깃도 없고, 그러다 보니 일방통행식 주장만 나열됐던 KIDA 행사와는 극명하게 대조됐다.

주재국 국민의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는 공공외교의 취지와는 동떨어진, KIDA 행사 같은 ‘자기만의 잔치’는 왜 매년 되풀이되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외교부가 지난해 1월 공공외교 대사 직제와 함께 정책공공외교담당관실·지역공공외교담당관실까지 만들었는데도 관행은 올해도 바뀌지 않았다. 외교부뿐 아니라 통일부·국방부·산업통상자원부 등에 각종 공공기관까지 나선 ‘중구난방’식 행사가 올해도 졸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작 공공외교 집행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예산은 올해 20억 원에 불과했다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공공외교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하는 ‘컨트롤타워’ 기능이 아직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어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공공외교는 각종 영역에서 이뤄지는 일회성 문화외교와도 분리해야 한다. 지난 13일 유엔총회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홍보하는 행사가 공공외교라는 식으로 계속 포장돼서는 곤란하다. 공공외교는 일방적 홍보가 아니라 상호 소통에 따른 이해 증진이라는 장기적 목표하에 치밀하게 수립·집행돼야 한다. 외교부에 대사와 과장급 2명을 둔 전담 조직까지 만든 이유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 공공외교의 성패는 전 세계 각국의 외교 각축장인 워싱턴에서 판명 날 것이다. 끈질기고 집요하게 접근해도 중국·일본에 비해 턱없이 ‘총알’이 부족한 한국의 승산은 높아 보이지 않는데, 장기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공공외교 정책이 영 미덥지가 않다. boyoung22@
신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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