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대책 정부 - 이재민 엇박자
2~3인용 텐트 사생활침해 논란


“수개월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각오하고 있는데, 차라리 조그마한 컨테이너 주택이라도….”

경북 포항 강진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이재민 거주대책이 피해 주민의 요구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 텐트촌과 임대주택 확보 등 거주 대책을 마련했지만, 이재민 사이에서는 컨테이너 조립식 주택을 지어 달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1일 오전 경북 포항시 흥해읍 흥해공고 체육관에 380여 명의 이재민이 바닥에 빼곡히 앉아 있었다. 손위 동서(여·91)와 함께 지내고 있는 이시향(여·74) 씨는 “동서가 거동을 못 해 수발을 들고 있다”며 “사람이 많아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고 호소했다. 또 옆에 있던 이순화(여·71) 씨는 “짜장면, 국밥 등 매끼 음식을 제공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맙다”면서도 “당뇨 등에 따른 식단 조절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15일 포항 지진 발생 당시 인근 흥해체육관에 머물렀다. 하지만 칸막이 시설이 없어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자 시가 텐트를 설치하면서 잠시 흥해공고체육관으로 이동했다. 흥해체육관에 있던 주민 중 300여 명은 인근 남산초등학교 강당에도 임시 대피해 있다.

시는 이날 오전 흥해체육관에 텐트 250개(2~3인용) 설치를 완료하고 2곳에 분산돼 있는 주민 가운데 주택 피해가 심한 이재민 위주로 다시 수용했다. 하지만 일부 이재민은 텐트가 닥지닥지 붙어 있어 사생활 침해는 여전하고 답답해서 오히려 불편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시는 나머지 주민은 포스코수련원, 칠포수련원 등에 분산해 거주토록 했으나 먼 거리라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고금분(여·73) 씨는 “어차피 피난 신세가 수개월 걸릴 것이라면 컨테이너 주택을 마련해 가족 단위로 임시로 생활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정부와 포항시는 원하는 이재민을 상대로 즉시 입주할 임대주택 500가구를 확보하고 최대 1억 원까지 전세금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이재민들은 그다지 반기지 않고 있다. 윤정식(여·65) 씨는 “전세금은 빚이 아니냐”며 “젊은이는 몰라도 노인에게는 효과가 없는 지원”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포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지원 및 복구 대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포항 =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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