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강의실에서 김한 변호사가 ‘성범죄와 법적 문제’를 주제로 무료 강연을 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지난 6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강의실에서 김한 변호사가 ‘성범죄와 법적 문제’를 주제로 무료 강연을 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서울변회 시니어 프로보노지원단

50代이상 중견 변호사 10명
사회적 약자 돕는 봉사 활동
매주 강연하고 1대1 상담도

후견·상속부터 임대차까지
일상에 유용한 법률 위주로
실제 사례 들며 생생한 강의

“전문성 살린 봉사가 프로보노
시니어 변호사들 참여 늘 것”


평균 수명이 연장되면서 100세 시대는 이미 현실이다. 변호사 공급 과잉 시대도 수년 전부터 제기되던 문제였다. 이 두 가지 명제가 결합하자, 은퇴를 앞둔 시니어 변호사들의 역할론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시니어 프로보노지원단(회장 김한)은 이런 고민들 속에서 지난 10월 출범했다. 프로보노(Pro Bono)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무료봉사 활동을 말한다. 시니어 프로보노지원단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2009년 설립한 공익재단법인 ‘동천’ 산하 비영리단체(NPO) 법센터에서 시니어 변호사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변호사들이 모여 서울지방변호사회 프로보노센터 산하 공식 단체로 만들어졌다. 주로 판·검사, 대형 로펌 변호사 등을 거치며 풍부한 경력을 자랑하는 10명의 50대 이상 시니어 변호사들이 뭉쳤다.

첫 활동은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와 공동으로 진행한 ‘50+ 법률멘토링’ 프로그램. 법률지식을 얻고자 하는 50대 이상 시니어와 법률 지원을 필요로 하는 공익단체 등을 상대로 강연과 1대 1 상담을 진행한다. 모든 건 무료다. 이들이 프로그램을 홍보하며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이렇다.

“답답했지만 아는 변호사가 없어서, 너무 사소한 것 같아서, 비용이 부담돼서 주저했던 법률적 고민이 있다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지난 6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3층 모임방에서 ‘성(관련) 범죄와 법적 문제’를 주제로 진행된 강의 현장을 찾았다.

“가장 간단하면서 쉬운 성범죄 예방법은 사실 ‘서로 가까이하지 말자’ 이거죠.”

강연자인 김한(64·사법연수원 14기·서울종합법무법인) 변호사의 이 같은 첫 마디에 50대 전후 수강생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자 어색한 분위기가 바로 풀렸다. 김 변호사를 필두로 한 프로보노지원단 소속 변호사 10명은 지난 9월 18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2시마다 이곳에서 각기 다른 주제로 약 2시간씩 강연해오고 있다. 의제는 △명예훼손 △후견·상속 등 노후대비 △주택임대차·교통사고 등 생활법률처럼 누구나 살면서 맞닥뜨릴 수 있는 법률적 상황에서부터 △고소·고발에 대한 대응, 수사받는 요령 △민사소송 대응전략 △해외투자 등 국제거래관계처럼 전문적인 분야까지 망라돼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주제들로 이뤄진 강연은 총 10회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이날 ‘성범죄’를 주제로 열린 여섯 번째 강연에서는 평소 20명에 달하던 수강생이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서울시50플러스 관계자는 “성범죄가 예민한 문제기도 하고 ‘나한텐 해당 사항이 없다’고 생각해서 다른 강연들에 비해 참여도가 떨어진 것 같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성범죄는 인터넷에서 오늘의 뉴스만 찾아봐도 매일 최소 2∼3건 이상 발생하는 이슈”라면서 “늘 예방법·대응법 등을 숙지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성범죄 관련 형사특별법이 과거에 비해 점점 더 세밀하게 개정되면서 자신의 죄명이 뭔지, 적용 법률이 뭔지 잘 모르고 수사·재판을 받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면서 “이 때문에 한번 성범죄 송사에 휘말리면 인생 자체가 망가질 정도로 위험하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마침 이날 온라인에서는 한 중견기업에서 벌어진 사내 성폭행 사건으로 관련 기사가 도배됐다. 한 50대 수강생 남성은 “이번에 불거진 직장 내 성폭행 사건에 관한 공방들을 접할 때마다 과연 진실이 뭘까, 내가 저런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했던 차에 이번 강의를 듣게 됐다”고 말했다. 한 50대 여성은 “예전에는 딸에게 밤늦게 다니지 말라거나 아무 남자나 만나지 말라고 조심시켰는데, 요즘에는 ‘오해 살 만한 일을 절대 하지 말라’며 아들을 더 단속하게 된다”고 밝혔다.

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김 변호사는 A4용지 3장짜리 자료집을 나눠준 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는 일본영화를 틀었다. 이는 출근 시간대 지하철에서 치한으로 오해받은 한 젊은 남자가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국가의 사법제도와 맞서 싸우는 법정영화다. 김 변호사는 “사건 이후 재판과정이 너무 자세해서 법조인들도 보면 좋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김 변호사는 “영화 속에 ‘열 명의 죄인을 놓친다 하더라도 죄 없는 한 사람을 벌하지 말지어다’라는 문구는 깊은 울림을 주지만, 현실은 반대”라면서 “특히 성범죄자에게 무죄를 선고하거나 풀어줄 경우 사회적으로 굉장히 비난받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검찰·경찰도 마구잡이 기소를 하고 법원도 무죄 추정의 대원칙보다 오히려 유죄의 심증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검사·판사가 내 무죄를 알아주겠지’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본인이 직접 맡은 사건들을 사례로 소개하며 사실감을 더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맡은 사건이 강제추행인데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현재 2심 계류 중”이라면서 “피해자가 특별히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며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게 유죄 판단의 이유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심각한 표정을 한 수강생들은 이 대목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그는 인정신문, 검찰의 공소요지 설명, 변호사의 변론요지 진술, 증거조사 순서로 이어지는 형사재판의 일반적인 과정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그는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재판부에 제출되는 검찰 피의자신문조서는 검경이 미리 만들어놓고 사인만 하라고 하거나 피의자가 아니라고 해도 ‘나중에 합의하면 된다’고 설득하는 등 범행을 ‘반 인정’한 것으로 작성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오죽하면 조서(調書)의 조는 ‘꾸밀 조(造)’라는 얘기가 나오겠느냐”라고 반문한 김 변호사는 “조서는 한 번 잘못 만들어지면 재판이 끝날 때까지 계속 가는데, 수사 당시 당사자만 있으면 용어를 잘 모르니까 조서를 안 고쳐주고, 변호인이 입회하면 그제야 고쳐주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강의 내내 김 변호사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성에 관한 관념의 재고·예방책 등이 필요하지만, 일단 일이 터진 뒤에는 조속히 형사 전문 변호사와 상담해서 초기대응부터 발 빠르게 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까딱하다간 인생을 망치게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재판은 3심제라 피고인이 1심에서 무죄를 받았더라도 검찰이 항소·상고하고, 결국 끝까지 가 봐야 유무죄를 확정받을 수 있다”면서 “특히 성범죄로 재판을 받게 되면 가족·주변인들의 눈총과 언론 보도 등에 시달리게 되는데,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끔찍함”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몰린 남성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수차례 발생하자 관련 보험상품까지 설계해 내놨다”면서 “신속히 변호사를 불러서 최초 조사를 받을 때부터 변론을 받게 해놓은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강의를 듣던 김재년(63) 씨는 “공공기관 임원으로 있던 친구가 4∼5년 전 성추행 사건으로 인생이 박살 나는 걸 보고 이번 강연에 특히 관심을 두게 됐다”면서 “무고하게 피고인 입장이 되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요”라며 공감을 표했다. 수강생들의 궁금증은 많았다. “나중에 합의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합의금은 어느 정도냐” “통상의 범위라는 게 있지 않으냐” 등 질문이 이어졌다. 김 변호사는 상세하게 답변해 주었다.

“성범죄가 비친고죄로 개정되면서 합의를 해도 수사·재판은 계속 받아야 한다. 대신 형량에 참작된다. 다만 합의는 그 의미가 자신의 유죄를 인정한다는 걸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함부로 합의하는 것은 권하지 않기도 한다. 합의금은 민사의 경우 금액에 대해 판사가 결론을 내려주지만, 형사 합의금은 어떤 정해진 기준이 없다. 당사자 재력 등에 따라 달라진다.”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된 강의가 끝나자 수강생들은 강의 초반에 잠깐 소개됐던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다시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50플러스 관계자는 “변호사와 개별 상담을 원하는 분이 있으면 4시 이후에 비공개로 상담해도 된다”고 안내했다. 4시가 되자 사전에 온라인으로 1대 1 상담을 요청했던 남성이 강의실 밖에 마련된 휴게공간에서 자신의 회사 납품대금 문제 등에 대해 김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50플러스 관계자는 “매주 강의 신청 시에 비공개 법률 상담을 원하는 분들의 상담신청도 함께 받는다”면서 “강의를 듣지 않고 1대 1 상담 신청만 할 수도 있고, 상담 내용도 해당 강의 주제에 국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물어볼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강연 프로그램에는 김 변호사 외에도 김성규(62·사법연수원 30기) 신영 법률사무소 변호사, 임희동(67·6기·사단법인 온율), 이상희(58·군법 6회·이상희 법률사무소), 하상현(60·19기·법무법인 다래), 정장현(56·16기·법무법인 선정), 김남은(55·21기·대륙아주), 강용현(67·10기·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와 경향합동법률사무소의 이수경(68·군법 3회), 최재경(62·9기) 변호사 등 시니어 프로보노지원단 소속 회원들이 차례대로 참여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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