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에서 뱃길로 40분 노화도
그곳에서 만난 중학교 女선생님
시어머니에 찹쌀부꾸미 해드리려
한겨울 산에서 소나무 밑 쑥 캐내
시어머니 돌아가신 후 그리움 더해
그 선생님은 나에게도 그리운 사람
노화도에 다녀왔다. 노화도가 어딘가? 전남 해남의 한 섬. 한반도 땅 가운데서도 가장 남쪽에 있다는 땅끝에서도 배를 타고 40분 더 뱃길을 가야 만나는 섬이다. 고산 윤선도 선생의 유배지로 알려진 보길도 옆에 있는 섬이라고 말하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그곳의 한 중학교 선생님이 지난해부터 좀 와 달라 그러는 걸 올해서야 겨우 다녀왔다. 역시 문학 강연을 하기 위해서였다. 아주 먼 길. 하루의 행선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길인데, 그것이 가능했다. 그것은 오로지 대중교통이 발달한 덕이고, 그곳 선생님들의 배려 덕분이다. 나는 자가용 차가 없는 사람. 애당초 강연 담당 교사가 공주에서부터 노화도까지의 모든 대중교통편을 촘촘하게 알아서 체크해 주었다.
산 넘고 물 건너 택시와 버스, 기차와 배, 모든 대중교통 수단을 번갈아 타면서 어렵게 찾아간 길이었다. 학생이 많지 않아 강당에 전교생을 모아놓고 시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을 가지고 온 아이들에게 사인만 해주고 급하게 귀로에 올랐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다. 찾아가던 길 역순으로 돌아오면 되는 일이지만, 문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오후 차편이 만만치 않았으므로 공주의 집까지 당일 돌아올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다음 날에도 충청도의 어느 학교에 강연이 약속돼 있었는데 말이다.
딱한 사정을 알고 구원투수를 자청하고 나선 사람이 바로 그 학교 음악 담당 김미현 교사다. 김 교사는 내가 배를 타고 노화도에 내렸을 때도 부두에서부터 나를 맞아 학교까지 자동차로 데려가 준 그 사람이다. 아예 내가 KTX 편으로 공주에 가기 좋도록 광주 송정역까지 데리고 가겠다고 나섰다. 물론 자기의 자동차를 운전해서다. 고마운 마음으로 나는 김 교사의 자동차를 타고 노화도에서 육지로 나가는 배에 올랐다.
배의 손님으로는 우리 두 사람 외에 한 사람밖에 없었다. 우리는 배의 선실, 장판방에 다리를 뻗고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 교사는 40대 초반으로, 우리 집 아이들 나이 또래라서 바로 친근감이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김 교사는 자기의 시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도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고 그립다고. 참 별스러운 사람도 다 있구나 싶었다. 며느리 된 여성들은 시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얼굴을 찡그리는 세상인심인데 말이다.
하지만 김 교사는 시어머니와 그렇게 정이 좋았다고 한다. 임종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자기를 아들처럼 믿고 의지했다고 한다. 좋은 곳을 모시고 다녔고, 원하는 음식을 잡수시도록 했다고 한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있었다는 일화는 감동적이다. 마침 겨울철인데, 시어머니가 쑥을 넣어서 만든 찹쌀부꾸미를 자시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뜬금없는 주문으로, 문제는 쑥이었다. 한겨울철에 쑥이 있을 까닭이 없었을 터.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이 착한 며느리는 칼과 그릇을 챙겨 들고 소나무가 우거진 산을 찾아가 소나무 밑을 뒤졌다고 한다. 어린 시절 가끔 소나무 밑 낙엽 덤불 아래 겨울 쑥이 자라고 있던 기억을 상기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몇 군데 소나무 밑을 뒤진 결과 정말로 소나무 아래 덤불과 낙엽 속에 새파랗게 자라 있는 쑥 무더기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쑥을 잘라다가 시어머니에게 정말로 찹쌀부꾸미를 만들어 드렸다고 한다. 옛날 효자 이야기에나 나옴 직한 그런 이야기다.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아들이 아니고 며느리란 것. 시어머니는 마지막 임종 시에도 며느리를 부르며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악아, 악아…’ 그렇게 몇 번 부르면서 무슨 말씀인가를 하려고 하다가 더 이상은 말을 못하고 숨을 놓으셨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김 교사의 모습이 참으로 예쁘고도 사랑스럽다. 요즘 세상에 이런 며느리가 다 있을까. 김 교사는 말을 마치면서 나에게 그리움이 무엇인지 물었다. 특히, 시인에게 그리움이 무엇인가, 그것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항용 나는 시의 원동력으로 호기심과 사랑과 그리움을 든다. 호기심은 새로운 것, 내가 아직 모르는 것에 대해 알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 시의 첫발을 놓는 마음이겠다. 그리고 사랑은 현재의 모든 사물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 아끼는 마음이다.
하지만 시를 낳는 가장 강력한 마음은 세 번째인 그리움의 마음이다. 그리움은 나에게 없는 것, 사라진 것을 원하는 마음이다. 어린 시절에는 호기심과 어울려 미래의 것들이 그리움의 대상이 될 것이고, 나이가 들면서는 과거의 것들이 그리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대체로 그리움은 상실에서 출발하는 마음이다. 애당초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것이 사라진 터에 그리움이 생긴다. 잃어버린 고향, 헤어진 사람, 흘러간 시간이 그리움의 주종이다. 그리움은 추억과 한 몸이고 애달픔과 슬픔과 고독과 이웃이다.
정말로 이 그리움이 없었다면 나는 시를 쓰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그리움이 많은 사람이기에 시에 매달리며 평생을 산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김 교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리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각성하는 기회를 가졌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딱 한 번 만나고 헤어진 고운 사람 김미현. 저 남쪽 바다 노화도의 한 중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
그는 비록 시인은 아니지만 그리움이 많은 사람. 부디 그의 그리움이 그의 인생을 보다 아름답고 밝은 길로 인도해 주기를 바란다. 나에게도 그는 오랫동안 그리운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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