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對韓 전략 갈수록 선명
중국 문명권 vs 한미동맹 64년
역사적 책임 거론 血盟 흔들기
내달 韓中 정상회담은 분수령
中은 ‘한국 진보정권’ 적극 활용
정세 본질과 大局 못 보면 재앙
최근 몇 년간 외교가에서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져왔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언젠가 미국과 패권을 다투게 될 텐데, 한국은 어느 쪽에 서야 하느냐는 논의였다. 대체로 2030∼2050년 사이에 진실의 순간이 올 것이고, 그동안 선택을 준비해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돼왔다. 중국이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한다는 예상 시기가 2030년, 군사 면에서 미국과 대등한 실력을 갖추겠다는 목표 시기가 2050년이다.
그런데,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진실의 순간을 갑작스럽게, 그리고 훨씬 빨리 앞당기려 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우리나라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미국과의 동북아 패권 다툼을 이미 한반도에서 시작한 것 같다. 시 주석은 지난 11일 베트남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현재 중·한 관계는 관건적 시기에 있다”면서 “역사에 대한, 중·한 관계에 대한, 양국 인민에 대한 책임을 지는 태도로 역사의 시험을 견뎌낼 수 있는 정책 결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시 주석 발언에 큰 의미를 두려 하지 않았다. 정상회담 뒤 발표도 하지 않았고, 중국 외교부와 신화통신이 공개한 뒤에도 “늘 해오던 상투적 표현”이라고 대응하면서 넘어갔다.
그러나 외교 전문가들은 중요한 함의가 있다고 본다. 첫째, 과거. 한·중은 지리·문화·정치적으로 수천 년 역사를 공유한다. 그에 비하면 한·미 동맹의 역사는 단 64년. 긴 역사의 흐름을 볼 때 한국이 중국의 ‘문명권’을 벗어나 미국과 손잡는 게 적절하냐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 의도를 봐야 한다. 둘째, 현재. 한반도 분단은 한·미·일과 북·중·러가 충돌한 냉전의 산물이기 때문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로 가려면 냉전 구도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 그런데 한국이 미·일과 군사 협력을 강화하면 거꾸로 냉전 구도를 고착화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셋째, 미래. 한국이 계속 미와 손을 잡으면, 중국이 패권을 차지하는 시기에 한국인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경고라는 것이다.
중국은 사드를 전면에 내세워 한국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사드가 실제로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릴 가능성이 있다. 성주에 배치된 X밴드 레이더는 탐지거리 600∼800㎞의 종말 모드로 설정돼 있지만, 탐지거리 2000㎞인 전진배치 모드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고 중국은 본다. 그렇게 되면 선양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북부전구가 탐지거리에 들어가는데, 이곳에 워싱턴 등을 겨냥한 중국의 전략 핵미사일이 집중 배치됐다고 한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성주 X밴드가 중국 전략 미사일을 탐지하는 시간은 알래스카 등 다른 지역 레이더보다 5∼7분 정도가 빠르다. 미·러·중 간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목표점에 도달하는 시간이 20∼30분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전략적으로 결정적인 시간차다.
한편으로, 중국은 사드 배치를 둘러싼 혼란을 보며, 국내 보수·진보 세력을 이간질해 미·중 대리전을 시켜볼 만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중국은 한국 정권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성향도 고려했을 것이다. 동북아는 물론 글로벌 세력 균형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게임이 시작된 것 같다. 중국 정부는 게임을 기획하고 포석을 해나가는데, 문 정부는 그걸 얼마나 알고 따라가는 것인지 궁금하다.
문 대통령은 다음 달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지난 정상회담에서 던진 화두에 답을 줘야 할 것이다. 문 정부는 내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단기적·소국(小局)적 구상에 몰두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땅의 크기, 인구의 크기, 국력의 크기보다 국가 전략의 크기에서 압도당하는 것에 더 큰 우려를 하게 된다.
길은 세 갈래다. 첫째, 중국 패권은 말그대로 ‘꿈’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계속 미국과 손잡는 것. 둘째, ‘지는 해’ 미국과 헤어지고 ‘뜨는 해’ 중국과 손잡는 것. 셋째,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 세 번째가 그럴 듯하겠지만 우리의 국력, 특히 외교 역량을 감안하면 매우 어렵다. 둘째를 선호하는 국민도 있겠지만, 다수와 주류는 첫째라고 본다. 앞으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선택이다. 오락가락은 재앙을 부를 뿐이다. 국제 정세와 우리 국력에 결정적 변화가 오기 전에는 한·미 동맹 이외의 대안(代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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