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100년 다뤄…
소설 쓰기 몇 년 더 했으면”
“‘유리’ 통해 비로소 작가로 완성된 느낌… 행복한 소설 쓰기 앞으로 몇 년 더 지속할 수 있다면….”
어느새 70대에 들어선 노작가의 바람은 크지 않았다. 이렇게 행복한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 1973년 등단 후 44년. 43번째 소설 ‘유리-어느 아나키스트의 맨발에 관한 전설’(은행나무)로 돌아온 박범신(71·사진) 작가는 26일 “이 소설은 고민 없이 쓰기에만 몰두했던 작품이다. 연필만 들면 진도가 나갔다. 쓰면서 행복한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번에 문장이 거침없이 완결되는 느낌이었다”면서 “사건이 춤추듯 떠올랐다. 작가로서 비로소 완성됐다는 자부심을 느꼈다”고 밝혔다.
28일 출간되는 ‘유리’는 20세기 초 아나키스트의 운명으로 태어난 유리라는 남자가 가상의 공간인 수로국, 화인국, 대지국을 떠돌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동물이 말을 하는 등 우화적 기법을 도입했으나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약 100년의 한국 현대사를 조망하고 있다. 이 소설은 지난해 3∼7월까지 모바일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돼 9만 명 독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어 10월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불거진 문단성추문 논란으로 연기됐다.
박 작가는 지난 1년간 이 소설을 다시 쓰다시피 했다. 당초 340쪽 분량이던 것에서 이야기를 더 추가해 588쪽으로 늘렸다. 일본군 위안부, 6·25전쟁, 박정희 정권 시대 등 질곡의 역사를 더 보완했다.
박 작가는 “개인의 자유가 억압받고 이름조차 존중받지 못했던 일제강점기 등 한국 현대사 100년을 다뤘다”며 “그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고투를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설이 결코 무겁거나 진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박 작가는 “누구나 알아야 할 한국 현대사를 좀 더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하려고 했다. 그래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위해 도입한 게 우화적 기법”이라며 “다행히 카카오페이지 연재에서도 젊은층이 크게 호응해줬다. 은유와 상징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의 본질에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최근 배수아의 ‘뱀과 물’, 이주란의 단편소설집 등을 읽고 있다. 젊은 후배들의 작품에서도 배울 게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지난 여름엔 ‘장자’를 다시 한 번 정독했다. 글을 쓰느라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장자 중 공자 말씀에 ‘큰일에는 허(虛)로 행하라’는 말이 있다. 나도 잡념을 버리고 허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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