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지난주에 삼성전자·LG전자 등 수입 세탁기에 대해 최고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결정을 했다. 이 같은 긴급수입제한조치에 대한 최종 결정은 내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리게 된다. 이번 세탁기에 대한 고(高)관세 부과는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공세의 시작으로, 향후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반도체·철강·태양광 산업 등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 세탁기 고관세 결정은 그동안 진행돼온 조사에 대해 결론 낸 것인지, 아니면 한·미 FTA 재협상 등 한·미 간 통상 문제를 더욱 증폭시키려는 의도인지를 먼저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진행돼온 세탁기 관세 부과에 대한 조사의 결말이라면 한국으로선 트럼프 방한을 통한 한·미 간 무역 불균형에 대한 조정 의지와 미국 내 고용 창출을 위한 공장 설립 등을 협상 카드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세탁기 고관세 부과가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신(新)보호무역의 부활이라면 수출 주도 경제를 이끌고 있는 우리에겐 중국의 자강주의와 함께 큰 타격이 될 것이다. 1970년대 미국과 유럽의 경기가 침체하면서 선진국의 신보호무역주의가 나타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수출 자율 규제, 상계관세, 반(反)덤핑관세, 긴급수입제한조치 등과 같은 비관세 장벽이 설치됐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새로운 무역질서가 논의되고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등장하면서 비관세 장벽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40년 만에 또다시 세계 무역질서가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자국 이익 우선주의에 의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1970년대 신보호무역주의의 최대 피해자가 일본이었다면, 최근 일어나고 있는 자국 우선·우위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자국 우선주의로부터 우리나라가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은 물론 정부도 급변하는 세계 경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세계 경제에서의 위상 변화를 인지하고 여기에 맞는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고 이제는 세계 교역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선진국이 됐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통상 관계에서도 우리는 이제 ‘선진국 대 선진국’으로서의 상호주의를 존중해야 한다. 한·미 간의 교역 문제를 양국 경제의 균형적 시각에서 서로 협력해 교역 규모를 확대함으로써 양국 모두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기업과 정부는 1990년대 미국과의 일방적 통상 프레임을 버리고 이제는 상호적 통상 프레임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즉,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면 우리 기업은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미국 내 투자 등과 같은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고, 우리 정부 역시 우리 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미국 기업에도 상호주의에 입각한 미국 자국 우선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으로부터 더는 통상 문제로 인한 어려움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도 이제는 선진국으로서 자유무역주의, 무차별주의 그리고 다자주의에 바탕을 둔 세계 무역질서를 지켜 나가려는 의지를 세계에 천명하고 이를 위한 국제적 신뢰를 쌓아야 한다. 우리 기업은 미국 내에서 좋은 기업시민으로, 우리 정부는 세계와 함께하는 자유무역을 구현하는 리더로 하루빨리 자리매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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