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주거공간에 살며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을 식구라 한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가정에서 식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등교와 출근 전쟁을 치러야 하는 아침은 각개전투다. 학교와 일터에서의 하교와 퇴근이 곧바로 귀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하교 시간에 맞춘 수많은 학원버스가 학교 정문 앞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피아노, 태권도 등 예체능학원에서 수학, 영어 등 입시학원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대부분의 초·중·고생이 집이 아닌 학원 버스를 타고 학교를 나선다. 학원 앞 편의점은 컵라면, 삼각 김밥 등 짧은 시간에 허기를 해결하려는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정시퇴근이 어색해진 직장인들의 퇴근 후 일정은 잔업 또는 직장 내 회식이나 친구들과의 모임으로 차 있다. 평일 저녁의 많은 가정에서 식구를 찾기 어려운 이유다.

함께 밥을 먹는 식구는 단순히 함께 허기를 해결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학교에서 칭찬받은 아이는 말이 많아지고, 별것 아닌 반찬을 황후의 찬이라 여기며 맛있게 먹는다.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이는 시무룩하게 식탁에 오지만 이내 엄마 아빠의 다독임에 국물과 함께 울적한 기분을 후루룩 들여 마시고 활력을 되찾는다. 직장에서의 고충도 따듯한 밥 아래 깔리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16년 발표한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조사 대상인 OECD 회원국 22개국 중 가장 낮았으며,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 5명 중 1명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식구가 없어진 가정 때문에 생겨난 비극은 아닐까. 밥을 함께 먹는 시간이 없어진 가족이 따로 시간을 내어 서로의 고민과 속 깊은 얘기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대화가 없는 가정은 숙박을 해결하는 의미 그 이상이 아니다.

2007년 카메론 스트레처가 쓴 책 ‘아빠와 함께 저녁을(Dinner with Dad)’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어떻게 난 가족의 식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잘나가는 변호사인 저자가 일주일에 5일을 저녁 6시까지 퇴근해서 저녁 준비도 하고 가족과 함께 식사함으로써 진정한 가족의 일원으로 되돌아가는 즉, 식구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그리고 아이들의 관심사를 식구가 됨으로써 비로소 알게 된다. 가정에서의 대화는 정서적 안정을 줌과 동시에 우울증이나 약물중독에 빠질 위험성을 현저히 낮춘다는 보고가 있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많은 가정이 식구가 모이지 않는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교 갔던 아이들이, 직장 갔던 엄마 아빠들이 가정으로 돌아와야 한다. 집에서든 식당에서든 이제는 식구가 모이는 저녁 시간을 가져야 한다. 기형적 문화는 기형적 인간과 기형적 국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국가는 식구를 가정으로 보내는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한다.

엄치용·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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