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치보 선생 ‘독립운동가’ 선정
6·25전쟁 발발 당시 북한군 공세로 국군과 경찰 병력이 철수한 뒤에도 경찰 철도대원들을 지휘해 개성경찰서 본부를 사수하다 산화한 감봉룡 경찰 경감이 12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됐다.
30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개성 지역 철도경찰대장으로 근무하던 감 경감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기습 공격으로 국군 제12연대와 개성경찰서 병력이 철수한 상황에서도 본부를 부하들과 사수하다 전사했다. 감 경감이 지휘하는 철도경찰대는 50명 대원 모두가 본부 사수를 결의하고 주변 요충지를 점거해 방어태세를 갖췄다. 북한군은 감 경감이 이끈 철도경찰대의 저항이 워낙 완강한 데다 개전 후 처음으로 조직적 저항을 받자 다른 통로로 진출하던 전차 5대를 동원해 본부 건물을 포격했다. 총탄이 부족하고 통신마저 두절된 상황에서도 감 경감과 부하들은 굴하지 않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돌격해 장렬히 산화했다. 국가보훈처는 이들의 분전은 전쟁 초기 북한군에 상당한 피해를 주고 사기를 저하시킨 숭고한 희생이었다고 밝혔다. 정부는 감 경감의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해 2014년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인 경주 안강읍 기계면 비학산 전투의 영웅인 김용식 육군 일병을 12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1950년 5월 육군에 자원입대한 김 일병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등병 소총수로서 전투의 최전선에 투입됐다. 1950년 8월 ‘북한군 제766유격부대 습격’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김 일병은 특공대를 자원했다. 첫 작전에 투입된 김 일병은 은밀하게 적진 침투에 성공했으며, 다른 특공대원들과 함께 적의 은거지를 기습 공격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8월 24일 비학산 전투에서도 김 일병은 다시 돌격작전 선봉에 서서 적 진지를 측면 기습, 적 군관 1명을 포함한 15명의 포로를 생포했다. 그러나 서울탈환작전 수행 직후 스무 살의 나이에 전사했다. 1951년 태극무공훈장 수여.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노인들의 의열투쟁을 이끈 독립운동 지도자 김치보 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선생은 1919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노인동맹단을 조직, 강우규 열사를 국내에 결사대로 파견해 새로 부임하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암살시도를 지원했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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