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난 좀 심심해.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히 밝아질 거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 테지만 너의 발자국 소리는 땅 밑 굴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길 봐. 저기 밀밭 보이지? 난 빵은 먹지 않아. 밀은 내겐 아무 소용도 없는 거야. 밀밭은 나에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그건 서글픈 일이지.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밀은 금빛이니까 나에게 너를 생각나게 할 거거든. 그럼 난 밀밭을 지나는 바람 소리마저 사랑하게 될 거야.”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중-

여우가 밀밭을 보며 어린왕자를 떠올리듯, 나에게도 신입 객실승무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밀밭 같은 도시가 있다. 태국의 방콕이다. 몇 달 동안의 신입 교육을 마치고 객실승무원으로 출발한 첫 도시였다. 그 당시 서울은 추운 겨울이었다. 나는 대학을 막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낯선 객실승무원 선배들과 함께 첫 비행 업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 긴장하고 신경을 쓴 탓에 심하게 감기에 걸려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맛있는 현지 음식과 피로를 풀어주는 시원한 마사지, 그리고 5시간 정도의 적당한 비행시간으로 가장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인데 수습 승무원인 나에게는 그 좋은 마사지도 음식도 어색하기만 했다. 막내 승무원이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모습으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으니 선배 승무원들 몇 명이 가족처럼 따뜻하게 챙겨줬다.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봐 친절하게 호텔 생활과 숙소 근처의 지리를 안내해줬다. 선배들이 너무도 고마워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부모님 곁을 떠나 난생 처음 가본 도시이자, 첫 비행 도시였기 때문에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컸다.

나의 신입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는 도시, 방콕. 서울이 추운 겨울이면 태국의 날씨도 조금 선선해지는데, 이때 여행을 떠나면 청명한 날씨의 태국여행을 할 수 있다. 짧은 주말 일정으로도 충분히 즐겁게 다녀올 수 있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마사지숍도 늦은 밤까지 문을 연다. 여기에 방콕의 치킨요리는 정말 맛있다. 독특한 기름의 향과 바삭바삭한 튀김옷은 밤마다 늘 먹고 싶은 맛으로 나를 유혹한다. 이번 12월 스케줄에 오랜만에 방콕으로의 비행근무가 예정돼 있다. 소설 ‘어린왕자’에서 밀밭 사이를 스치는 바람에도 여우가 설레하듯이 나 또한 수습 승무원 시절 그곳으로의 비행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대한항공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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