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인 ‘환상의 빛’에서 수평선을 가로지르는 장례행렬과 그 뒤를 따라가는 주인공의 모습(오른쪽)을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장면을 직접 그림 콘티(왼쪽)로 그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인 ‘환상의 빛’에서 수평선을 가로지르는 장례행렬과 그 뒤를 따라가는 주인공의 모습(오른쪽)을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장면을 직접 그림 콘티(왼쪽)로 그렸다.

■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 바다출판사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의 감독
작품 되짚으며 담백하게 기록

구상서 완성까지 8년 걸린 책
실수·후회·깨달음 등 풀어내

콘티·스케치도 책 속에 수록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 담아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오른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사진)의 첫 작품인 ‘환상의 빛’(1995년)은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으로 꼽힌다. 이 영화는 남편이 기차선로에서 자살한 후 딸과 함께 아들이 있는 남자와 재혼한 여인이 죽은 전 남편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등장 인물들의 삶을 멀리서 지켜보려는 듯 넓은 앵글로 잡은 롱테이크 화면을 담담하게 펼쳐낸 이 영화는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장면을 반복해 보여주며 제목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영화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촬영상(황금오셀리오니상)을 수상했으며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이 영화를 “반성할 점이 굉장히 많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와세다대 문예학과 출신으로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그가 처음으로 쓴 자서전에서다. 그가 가장 괴로워한 점은 처음 나서는 영화 현장에 대한 불안감에 직접 300장의 그림 콘티를 그렸고, 그것에 얽매여 현장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일을 영화에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영화가 처음에는 TV 드라마로 계획됐지만 각본 초고를 읽고 빛과 그늘의 묘사에 대한 고집이 생겨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제작비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신인 여배우가 30분 동안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는 바로 그를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또 돈을 못 구한 상황에서 무모하게 촬영을 감행한 후 “베니스가 좋겠다”고 말한 허샤오시엔 감독의 조언대로 완성작을 베니스영화제로 보내 경쟁부문에 초청되고 상까지 받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런 과정을 “기적적 행운”이라고 회고하지만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가족의 의미와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떠올리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구상에서 완성까지 8년이 걸린 이 책에서 자신이 만든 영화와 TV 다큐멘터리의 제작 과정과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 이를 통해 경험한 실수, 후회, 반성, 깨달음 등을 생생하게 기억해내 섬세하게 풀어냈다. 그가 대학 졸업 후 1987년 입사해 27년간 몸담았던 TV 다큐멘터리 제작사 티브이맨 유니언에서 만든 비판적 시각이 돋보이는 다큐멘터리부터 2014년 독립해 제작자 집단 분부쿠(分福)를 만들어 내놓은 영화까지 총 25편의 작품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쓴 내용이 빼곡히 담겨 있다.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영화에 시대를 담고, 제작 과정에서 곤경에 처해 위기를 겪은 그의 이야기 결이 그가 만든 영화의 결과 마찬가지로 담백하게 느껴지며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는 ‘후기 같은 서문’에서 “내 작품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능숙하지도 않다”고 썼지만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틈새를 촘촘하게 이어붙인 글을 읽으며 달뜬 표정으로 술술 글을 써내려가는 그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 책은 그의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안내서다. 행간에서 그의 영화에 대한 깊은 고뇌가 느껴지며 그가 만든 영화의 여러 장면이 글자와 어우러져 흘러간다. 또 그가 직접 그린 그림 콘티와 스케치, 메모, 메이킹 스틸 등도 담겨있다.

그가 ‘아무도 모른다’(2005년), ‘걸어도 걸어도’(2009년),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년), ‘태풍이 지나가고’(2016년) 등을 통해 관객에게 선사한 ‘누구나 살다 보면 힘든 일을 겪지만 다 이겨내게 된다’는 메시지는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는 책 마지막 장에서 앞으로 20년 동안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소개하며 다음에는 ‘홈’에서 ‘사회’로 시야를 넓혀 법정물에도 도전해 보려 한다고 밝힌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 ‘세 번째 살인’이 14일 국내 개봉한다. 448쪽, 1만8000원.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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