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나 영국의 해외정보원(MI6), 이스라엘의 모사드와 같은 정보기관들은 수장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도 잘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비밀을 유지하고 있다. MI6의 경우 2010년에서야 100년 만에 처음으로 국장이 공개석상에서 연설할 정도로 베일에 가려져 있다. 모사드의 경우, 일반인은 수십 년 동안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다. 비밀이 생명인 국가 정보기관이 요즘 국가정보원처럼 까발려진 사례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서훈 국정원장은 29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국정원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개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정치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이름을 바꾸겠다는 것인데 국회 통과가 관건이다. 1961년 중앙정보부에서 시작해 전두환 정권 때 국가안전기획부로,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으로 바뀐 이후 4번째 개명(改名)이다. 이름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원훈(院訓)과 문장(紋章)도 바뀔 가능성이 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름이 바뀌다 보니 인터넷에는 간첩이 자수하려 해도 이름을 몰라 못할 것이라는 우스개도 나돈다.

중정은 미 CIA와 관련이 깊다. 미국이 1958년 CIA 한국지부를 설치하자 한국은 부랴부랴 국방부에 ‘79호실’이란 조직을 설치해 정보 교류에 나선다. 장면 정권 때 중앙정보연구위원회로 바뀌었다가 5·16 이후 중정이 된다. 초대 중정부장인 김종필 전 총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를 부훈으로 삼았다. 드러나지 않게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36년간 사용되던 이 부훈은 과거 중정에 탄압받아 ‘음지’를 싫어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뀌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또 바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소리 없는 헌신’으로 교체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홍역을 치렀고, 적잖은 전임 국정원장들은 범법자 신세가 됐다.

CIA는 창설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이름, 문장, 표어(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가 바뀌지 않았다. 국정원의 본질적인 문제는 정보를 사용하고 국정원을 관할하는 대통령에게 있다. 정보기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으면 되는데, 가장 중요한 기능까지 해체하겠다고 한다. 누가 가장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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