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 / 맥스 테그마크 지음, 백우진 옮김 / 동아시아

유전자·신체‘진화의 시대’지나
기술의 힘 빌린‘설계의 시대’로

인간의 知的능력 훌쩍 뛰어넘는
범용 AI 등장 가능성도 점쳐져
호모 사피엔스로서 자부심 위기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삶이 대안


한마디로, ‘멋진 책’이다. 세상의 가치 있는 모든 일은 소수만 향유하던 것을 인류 전체가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서 나온다. 석빙고를 냉장고로 바꿀 때, 마차를 기차로 바꿀 때, 인류는 위대한 한 걸음을 걷는다. 책은 주로 정보를 다루는데, 소수의 비법을 모두의 상식으로 바꾸어 놓는 식으로, 편집자들은 인류의 위업에 참여한다.

인공지능에 관해서라면, 맥스 태그마크의 ‘라이프 3.0’이 아마도 이런 일을 해낸 듯하다. 인공지능의 과거, 현재, 미래를 소수 전문가의 지식에서 다수 시민의 지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책 덕분에 우리는 집에서, 학교에서, 밥 자리에서, 독서모임 등에서 인공지능을 둘러싼 대화를, 전문가와 어깨를 견주는 동등한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생명이란 자기 복제를 위한 정보 처리 시스템이다. 실제로 복제되는 것은 정보(소프트웨어)이고, 물질(하드웨어)은 정보에 맞추어 완전히 새롭게 배열된다. 생명은 세 단계에 걸쳐 발달한다. 생물적 단계인 ‘라이프 1.0’은 어떤 생명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진화할 뿐 설계되지 않는다. 박테리아처럼 수많은 시행착오(변이)를 거쳐 주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뿐 개체 차원의 진화는 불가능하다. 문화적 단계인 ‘라이프 2.0’은 하드웨어는 진화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설계되는 단계이다. 현재의 인간처럼 주변 환경에서 수집한 정보에 대응하는 방식을 학습함으로써 개체 차원에서도 소프트웨어를 진화시킨다. 게다가 인간은 잠재된 하드웨어(신체)를 성장하는 동안 환경에 적합하도록 발현시킨다. 운동을 통해 몸을 튼튼하게 만들 수도 있고, 읽고 쓰고 말하는 모듈을 선택적으로 설치해 소통 능력을 증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물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아무도 100만 년을 살 수 있거나 위키피디아를 전부 외우거나 우주선 없이 우주비행을 할 수 없다.”

기술적 단계인 ‘라이프 3.0’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설계하는 단계를 말한다. 기술의 힘을 빌려서 “진화의 족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으로, 타고난 하드웨어를 마음대로 변형하고 증강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인간 수준의, 또는 인간을 넘어서는 범용 인공지능이 바로 이런 ‘생명’에 해당한다.

이러한 인공지능이 존재할 수 있을지, 존재하더라도 가까운 시기에 그것이 나타날지, 근미래에 나타나더라도 보통 기계들처럼 인류를 더 편리하고 행복하게 할지, 아니면 초지능의 출현이 인간의 영원한 암흑시대를 불러들일지 등등의 문제에 대한 의견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갈린다.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유일한 대답이다. 초지능이 출현한다는 주장이나 그 반대 입장이나 똑같은 확률로 내기를 하는 중이다.

문제는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는 인공지능의 능력이 너무나 뛰어나다는 것이다. 현재 수준으로도 인공지능은 우리가 일하고 놀고 배우고 행동하는 모든 일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우리의 삶 전체와 결합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를 변화시키는 중이다. 내비게이션이 운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검색엔진이 공부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지능형 조리도구가 요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생각해 보라.

인공지능의 능력이 강화될수록, 한 차례 오작동으로도 세계 경제를 카오스로 만들거나, 확산이 빠르고 치명적인 합성생물 탓에 인류 자체가 위기를 맞거나, 돌발적인 핵 전쟁이나 초거대 인공지진 등으로 세상 전체가 종말을 맞을 위험도 증가하는 중이다. 따라서 범용 인공지능의 등장 확률이 절반이라면 사전에 있을 수 있는 여러 문제를 검토하고, 현실적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저자가 전 세계 전문가들과 함께 인공지능시대를 대비하는 ‘생명의 미래 연구소’(FLI)를 설립하고, 이 책을 집필한 이유다. 인공지능을 잘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인류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은 인공지능을 둘러싼 과학적, 기술적, 철학적 청사진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가까운 미래로 다가온 직업의 종말이나 부의 불평등 문제의 처리에서부터 라이프 3.0 시대가 찾아와 온 우주로 생명의 활동 영역이 확장될 아주 먼 미래에 이르는 광대한 미래사를 살펴볼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서 가능한 예측을 통해 저자는 우리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원하며 그 방향을 어떻게 잡아갈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인공지능은 너무나 강력한 지능을 보유할 것이므로, 실리콘밸리 몇몇 기업이나 밀실 행정을 일삼는 국가에만 그 미래를 맡겨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고, 윤리의 문제다. 인공지능에 어떤 방향을 부여할 것인가는 시민사회 전체가 숙고를 통해 의미를 도출하고, 이에 근거를 두고 결정해야만 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의미심장하다. 인공지능은 호모사피엔스의 자부심을 인간에게서 박탈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끝은 거기가 아니다. 생명이 나타난 까닭은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세계를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인간, 즉 호모 센티언스야말로 인간의 진짜 모습이다. 과학기술의 마지막 메시아가 결국 문학이라니, 이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닌가.

장은수 출판평론가· 순천향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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