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우리 가락·신명 나는 춤사위
마당놀이 인기몰이로 30년

근본적인 변화 위해서 마침표
4년 뒤 젊은 배우들 다시 무대

강산 4번 변해도 절절한 외침
지친 관객 마음 보듬는 연말을


♬오늘 오신 손님∼ 오늘 오신 손님∼ 오늘 오신 손님네 반갑소∼/ 우리들은 마당놀이패! 춘향전∼ 심청전∼ 흥보전∼ 수궁가/ 무엇이든 말씀만 하시구려∼ 웃자 하면 이춘풍! 울자 하면 심청!/ 이 굿판을 못 보시고 죽은 사람 억울해서 북망산천 어이 가리∼/ 오늘 오신 손님 오늘 오신 손님 오늘 오신 손님네 잘 왔소∼♬

12월이 시작되면 목이 터져라 불러 젖히던 노래다. 연말연시를 뜨겁게 달구던 ‘마당놀이’에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올리는 첫 곡인데, “오늘 오신 손님∼” 하고 외치면 “예∼” 하고 화답하는 관객의 함성이 귓가에 먹먹하다.

‘김성녀’ 하면 많은 사람이 마당놀이를 떠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마당놀이는 내 배우 인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나와 30년을 함께한 마당놀이는 내 배우 생활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연극이 맨날 서양극만 해서야 되겠나, 우리 연극의 원형을 찾아서 고유의 정서가 담긴, 우리 것을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자.”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함께 만든 마당놀이는 그렇게 1981년 12월 2일 시작됐다.

무대는 관객들의 한가운데 마련됐다. 기존의 무대와는 다른, 마당 한가운데서 공연하는 방식으로 배우와 관객의 경계를 허물며 관객과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는 생명력이 넘치는 공연이 펼쳐졌다. 우리 고유의 이야기가 주요 골격이었지만, 옛날이야기가 아닌 오늘의 이야기로 관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했고, 흥겨운 우리 가락과 신명 나는 춤사위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적시며 공연은 대성공을 이뤄냈다. 답답한 세태를 풍자하고 아픈 곳을 꼬집는 해학과 풍자는 마당놀이 인기몰이의 주역이었다.

이렇게 30년을 이어가며 신기록들을 세웠다. 해가 갈수록 관객이 많아지고 해마다 20만 명이 넘는 관객이 찾아왔다. 공연물로서는 엄청난 수다. 극장 문턱이 높아 한 번도 공연을 접해 보지 못했던 많은 분이 구름같이 몰려왔다. 어릴 적 부모를 따라왔던 아이들이 다시 부모가 되어 자식들을 데리고 오는 관객의 순환 구조를 이루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명절 같은 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관객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연출부터 작가·작곡·안무 그리고 주역까지 모두 30년을 장기 집권했고, 무명의 연극배우였던 마당놀이 삼인방은 ‘마당놀이 인간문화재’란 애칭을 얻으며 유명해졌다. 더구나 ‘마당놀이 삼국지’는 본토인 중국으로 역수출되기도 했는데, 중국 사람들은 마당놀이라는 독창적인 무대 양식에 열렬하게 호응을 보냈고, 어떻게 자기네 이야기를 이렇게 잘 만들 수 있느냐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30년 전 한창이었던 우리에게도 세월은 비켜 가지 않았고, 다음을 준비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알고 있었다. 관객들의 사랑은 여전했고 높은 인기를 누리며 매년 매진 행렬을 이어갔지만, 우리는 30주년 공연을 끝으로 마당놀이를 과감하게 그만두기로 했다. 함께한 모두에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시대가 변했으니 우리와 오랜 세월 함께해온 마당놀이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아쉬워했고, 관객들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많이 우리는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동안 보내준 관객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돌아보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30년, 참으로 긴 시간을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지나온 세월보다 더 오래 앞으로 달려가기 위해서라도 마침표를 찍어야만 했다.

그리고 4년 후인 2014년 12월 국립극장에 의해 마당놀이는 부활했다.

33년 전 첫 마당놀이 연출 손진책 씨를 비롯해 작곡가 박범훈, 안무가 국수호 씨가 다시 뭉쳤다. 그리고 배우였던 나는 연희감독으로 젊은 배우들에게 마당놀이 연기와 노래를 아우르는 연기술을 전수하며 스태프로 참여했다. 다시 시작된 마당놀이에도 관객들은 여지없이 객석을 꽉 채우며 젊은 배우들의 마당놀이를 전석 매진으로 응원해 주며 벌써 4년째를 맞고 있다.

나라의 우환이 있었을 때도, 경제가 파탄 났던 외환위기 때도 마당놀이는 늘 성황을 이뤘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원래 한을 흥으로 푸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신명 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마당놀이는 그런 우리 민족의 기질과 잘 맞아떨어진다. 더욱이 마당놀이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사회문제 등을 풍자한다. 어떻게 보면 서민들의 속풀이 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

갑질 사건들이 난무하고 정치판이 서민들을 외면할 때마다 우리는 서민들의 설움을 대변하며 놀았다. 서민들의 애환에는 용기와 희망과 시원함을, 가진 자들의 횡포에는 따끔한 경종과 회초리를 들고 춤과 노래로 달래며 놀았지만,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뀐 이 시점에도 똑같은 대사들을, 아니 더 절절한 외침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에 자괴감이 든다.

이제 2017년 판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가 항해를 시작했다. 젊은 마당놀이패들의 뜨거운 열기가 지친 관객들의 마음을 보듬고 연말연시 따듯한 촛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당놀이가 배출한 뛰어난 광대이자 산 역사인 배우 윤문식 씨는 마당놀이를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이것은 비단 윤 씨뿐만 아니라, 30년간 함께했던 모든 배우의 열망이기도 하다. 또 다른 30년의 역사를 이끌어 갈 젊은 배우들 속에서 원조 마당놀이 광대들의 멋진 회향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송구영신하는 이때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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