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혼자 오지 않는다.’(Misfortunes seldom come singly) 재난 전문가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재난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더 큰 재난을 낳는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11·15’ 포항 지진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축적한 재난 대비 노하우를 평가하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보여줬다. 기상청은 포항 지진을 발생 후 3초 만에 관측하고, 22초 후에 경보를 발령했다. 그리고 지진 발생 26초 만에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역대 최대 규모(5.8)였던 지난해 경주 지진 때는 긴급 재난 문자가 지진 발생 후 8분이 지나서야 발송됐다.
서울에서 포항까지 직선거리가 대략 270㎞임을 생각하면 지진 피해를 주는 S파(평균 속도 3.5㎞/s)가 서울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77초쯤 된다. 문자가 발송된 뒤 기기에 도착하는 시간(3초)을 생각해도 S파가 도달하기 48초 전에 재난 문자를 받는다면 안전 지역으로 피하기에 충분하다. 이번에 조기 경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 것은 기상청이 경주 지진 때와 달리 국민안전처(현 행정안전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경보를 발령하는 체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조기 경보는 지진 피해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지진이 발생하고 1시간쯤이 지난 오후 3시 30분,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을 성남 공항에서 영접한 뒤 곧바로 포항으로 달려갔다. 피해 현장을 살펴본 김 장관은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 날 치러질 예정인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기를 요청했다. 수능 연기에 따른 대혼란이 걱정됐지만, 안전이 먼저였다. 물에 잠기는 순간까지 학생에게 그대로 앉아 있으라고 했던 세월호의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았다.
6일 국회에서 처리된 내년도 예산안에 지진 대비 예산이 1279억 원 늘어났다. 15억 원에 불과했던 지하 단층 구조 조사 비용이 28억 원으로 증액됐고, 한 푼도 없었던 해저 단층 지도 제작에 5억 원이 배정됐다. 다행이고 잘한 일이지만 시작일 뿐이다. 일본은 지진 경보를 최초 관측시간 기준 5∼20초 안에 발령한다. 이탈리아는 5∼10초 안에 발령한다. 우리는 아직 15∼25초 이내다. 경보 발령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현재 206곳인 지진관측소를 100여 개 더 늘려야 한다. 이번 지진으로 산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땅 밀림 현상이 곳곳에서 감지됐지만, 이를 감시하는 무인 시스템은 전국에 2곳밖에 없다.
지진 발생이 잦은 단층을 표시한 전국 단위 지도도 없다. 필로티(벽체 없이 기둥만 세워 떠받치는 구조) 건축물을 단층 위에 지어도 알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부산, 울산 등 남·동부 해안 지역의 신도시가 액상화 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지진에 약한 퇴적층에 건설됐는데도 이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시작조차 못 하고 있다. 무엇보다 개발 이익을 노리고 지진으로 붕괴 위험에 처한 아파트를 구매하려 하고, 집값이 내려갈 것을 우려해 위험 진단 표식을 떼어 버리는 욕심과 이기주의부터 버려야 한다. ‘안전이 최우선’이란 인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장비를 많이 마련해도 무용지물이다. 이제 겨우 생존의 기본 토대인 안전한 나라로 가는 길목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y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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