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주엽 문화부 선임기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한마디에 화약고 중동이 요동치고 있다.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공존하는 예루살렘은 언제든 폭발을 부를 뇌관인 만큼 국제사회가 중립지로 인정하며 균형을 맞추어왔다. 균형은 깨졌고, 말 그대로 종교전쟁의 지옥문이 열린 듯하다. 트럼프의 정치적 의도나 국제적 역학 관계는 차치하고, 이 사태는 새삼 종교가 지구촌 분쟁의 바탕에 있다는 걸 되새기게 한다. 무신론자 샘 해리스가 ‘종교의 종말’에서 했던 “종교적 믿음이 인류의 고귀한 관습이라는 생각은 너무 끔찍하다”는 말이 와 닿는 시기다. 종교 간 분쟁은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데 난관이 있다. 종교가 사회와 괴리되는 현상도 비슷하다. 자신의 종교만 선하고 세상은 악하다는 도그마에 사로잡히면 신의 계시와 선택받은 자로서 우월성만 존재한다. 상대 관점에서 돌이켜 보는 포용과 비판적 이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종교와 인문적 이성의 소통과 공존이 근대의 서막을 열었다면, 인류는 다시 원점에 선 느낌마저 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예루살렘 사태와 관련해 전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지혜와 분별’을 발휘하자”고 호소했다. ‘지혜와 분별’은 그리스 철학부터 성경에도 등장해 자주 인용되지만, 현대 종교학에서 ‘지혜’는 종교의 ‘영성’, ‘분별’은 세속의 ‘이성’에 가깝다고 본다. 그 균형이 중요하다. 이 말은 얼마 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청와대의 공식 답변 과정에서 ‘교황 발언 인용 실수’로 귀에 익은 ‘새로운 균형’(New Balance)이라는 용어를 떠올리게 한다. 교황은 이탈리아의 예수회 잡지 ‘라 치빌타 카톨리카’와 취임 6개월 만에 처음 긴 인터뷰를 했고, 세계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뉴욕타임스 등 서구 언론은 교황이 낙태와 동성결혼 문제 등에 교회가 사로잡혀(obsessed) 있는 걸 경계했다는 듯이 보도했고, 심지어 ‘가톨릭 교회에 충격파를 던졌다’고도 해석했다. 세속 언론의 논조로 본다면, 조 수석의 ‘실수’는 크게 지나치지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30페이지에 달하는 예수회 잡지와 인터뷰는 신앙이나 신학적으로 아주 깊은 내용을 담아 세속의 잣대로 재단하기는 어렵다. 교황의 ‘새로운 균형’이 무엇을 뜻하는지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교회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올인’하거나 도덕적 우월주의에 빠져 교회의 가르침이 포용과 사랑보다 우선해선 안 된다는 의미는 확실해 보인다. 그동안 교황의 행보로 미뤄, ‘뉴 밸런스’는 타 종교뿐 아니라 세상의 담론과 소통을 통한 ‘열린 기준’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영성과 이성의 조화인 ‘지혜와 분별’은 ‘뉴 밸런스’와 통하며, 이번 예루살렘 사태와 관련해서도 울림을 준다. 종교가 곧 역사이고 국가인 중동 이슬람권이나 이스라엘에 교황이 제안한 ‘뉴 밸런스’가 힘을 발휘하진 못할 것이다. 눈을 안으로 돌려, 최근 종교인 과세와 낙태죄 폐지, 세종시 한국불교문화체험관, 서소문역사공원 문제 등 여러 종교 간, 종교와 사회 간 갈등을 빚는 우리를 돌아보며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혹시 국내의 종교는 세상의 소리에 담쌓고 자신의 기준에만 올인하고 있지는 않은가.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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