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육가설 / 주디스 리치 해리스 지음, 최수근 옮김 / 이김

아이의 사회화에 영향 주는 건
부모가 아닌 집 밖의 또래집단
20여년간 ‘가장 논쟁적인 책’


“부모 되기 어렵다”는 말은 비단 자녀의 출산 과정에 수반되는 어려움을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녀의 일생을 책임지고 돌보는 존재로서 부모가 살아야 하는 삶이 녹록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부모의 양육이 아이의 성장과 성격 형성에 절대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반세기에 걸쳐 발달심리학을 지배해온 이러한 ‘양육가설’이 실제로는 허구에 가까우며, 부모들이 자녀를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발칙한 주장’이 오늘날 심리학계를 뒤흔들고 있다. 인간의 성장에 대한 ‘가장 논쟁적인 책’으로 평가받으며 1998년 초판이 출간된 이후 20여 년간 전 세계 22개국에 번역·출간돼 심리학계의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졌던 책이 국내에도 출판됐다.

이 책은 ‘부모가 아이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부모의 역할이 실제보다 지나치게 부풀려졌으며, 양육가설 자체가 ‘부모 두 사람의 성이 다르다는 것 자체로 아이들은 존재 자체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갈등을 겪는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결과 만들어진 신화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그 대신 저자는 아이가 실제로 사회화되면서 지대한 영향을 받는 것이 부모가 아니라 집 밖의 또래 집단이라는 데 주목한다. 아이는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또래 집단을 선택하고, 또래 집단에서 사회화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간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러한 과정을 대부분 자동적이고 자발적으로 밟아간다. 여기서 또래 집단이란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들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그보다는 대상을 둘러싼 ‘사회적 범주’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면 한 인간은 자신을 ‘여자아이’ 혹은 ‘남자아이’라는 사회범주와 동일시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한다. 저자가 내세우는 주요한 명제 중 또 다른 하나는 ‘유전자’의 중요성에 관한 것으로, 개인이 사회적 맥락에서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부모의 양육 때문이 아닌 이를 유도하는 유전적 요인 탓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견고히 하기 위해 유전학, 범죄사회학, 발달심리학부터 구전동화와 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증거를 가져와 805개의 미주와 770개의 참고 문헌을 별도 표기했다. 624쪽, 2만5000원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인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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