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경제산업부장

입법만능주의 따른 과잉규제
19代 가결안 86%가 의원입법
규제영향평가도 안 받아 문제

규제개혁은 효율적 자원 재배치
혁신성장, 규제개혁 선행돼야
규제 프레임 전환 시대적 과제


얼마 전 생명과학 연구자들이 현행 ‘생명윤리법’이 혁신적 연구·개발(R&D)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유전자 치료(임상) 연구를 허용해달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것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행사에서다. ‘인간 존엄과 생명윤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라는 전제가 붙었지만, 포지티브(원칙 금지·예외 허용)에서 네거티브(원칙 허용·예외 금지)로 바꾸자는 요구였다. 산업 분야가 아닌 곳에서 규제 프레임 전환을 들고나온 게 이례적이었다. 생명·안전 분야에서 규제를 없애자고 하면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으로 취급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유전자 치료 연구에 대한 질환 범위 규제는 폐지돼야 하며, 법률로 배아 연구의 내용을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의견 수렴은 과기정통부의 생명윤리법 개정 작업 차원이라고 한다. 생명윤리법은 2004년 제정됐는데, 현재의 엄격한 규제가 만들어진 것은 2005년 터진 ‘황우석 사태’를 거치면서다. 개탄 여론에 떠밀려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 연구를 하지 못하게 국회가 법을 바꿨다. 그렇게 스스로 족쇄를 채운 사이, 해외에선 생명공학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다. 유전자 가위는 물론 한국이 선도적이었던 줄기세포 분야에서도 일본이 2012년 노벨상을 받으면서 세계 최고 자리를 꿰찼다. 실정법 위반 여부를 엄정하게 다루면 될 사안을 ‘정서법’에 따라 단죄하면서 과잉 규제로 치달았고, 생명과학계는 그 값을 톡톡히 치러왔던 셈이다.

‘입법만능주의’가 횡행하는 토양이 여기다. 국회의원에게는 표(票)가 하늘이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시민단체의 입법 활동 평가에서 후한 점수를 받고, 의정활동 보고서를 그럴싸하게 꾸미려면 법안발의 실적이 중요하다. 사회적 문제가 생겨날 때마다 모두 해결사를 자처하며 입법권을 휘두르는 건 그래서다.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빌려주는 품앗이도 한다. 무엇보다 의원 입법의 경우 정부 입법과 달리 규제영향평가를 받지 않는다. 이 점을 노려 정부가 법안을 만들고 의원이 발의하는 사례도 많다. 이를 비꼬아서 ‘청부 입법’ ‘우회 상장’이라고 부른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가 “행정부의 규제만능주의와 국회의 입법만능주의가 합작하게 되고, 규제 우선의 과잉·졸속 입법이 탄생한다”고 줄곧 지적해온 문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연구센터에 따르면 19대 국회에서 의원발의 법안은 전체 발의법안 가운데 94%, 가결법안의 86%를 차지했다. 규제가 들어 있는 법안은 정부발의 법안의 경우 69건(8%)에 지나지 않았으나, 의원발의 법안 중에는 1287건(19%)이나 됐다. 20대 국회라고 해서 그러한 의원입법 만능의 풍토가 달라졌을 리 만무하다. 오죽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내놓은 ‘한국의 규제개혁 보고서’에서 “사전 영향평가가 의무화되지 않은 의원발의 법안에도 규제영향평가를 도입하는 등 규제 품질관리를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겠는가.

규제개혁의 본질은 누군가에게 특혜를 주자는 게 아니다.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서 높은 부문으로, 효율적인 자원 재배치(efficient resource relocation)를 촉진하자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이미 노동력 증가, 기술 개발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통적인 ‘투입-성장’ 단계를 넘어서 있다. 성장하려면 생산효율(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성장을 위해서도 규제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하는 논거다. 그러려면 규제 가운데 긍정적·부정적 파급효과를 사전에 분석해 불합리한 규제가 신설되거나 강화되는 것을 제어해야 한다. 그게 규제영향평가제도다. 네거티브 규제 전환은 사전규제를 최소화함으로써 민간의 혁신활동을 촉진하자는 취지다.

현재 국회에는 이렇게 규제의 틀을 바꾸는 두 종류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기존의 ‘행정규제 기본법’을 바꾸자는 개정안 4건과 ‘규제개혁특별법’ 제정안이다. 규제비용총량제, 신산업규제 탄력적용, 중소기업 차등규제 적용, 규제영향분석 결과평가 의무화가 공통으로 들어 있고, 제정안에는 여기에 더해 네거티브 규제원칙 도입, 의원입법 규제심사 강화가 포함돼 있다. ‘경제의 정치화’로 비판받는 시절, 12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들을 처리하는 것은 여야 모두에게 국가 경제를 위한 시대적 과제다.
오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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