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캇 서울 갤러리에 전시 중인 고대 문자 유물. 페루 모체문명 채색 화병(5∼9세기·왼쪽부터)부터 중국의 산스크리트어 사리함(13∼15세기), 메소포타미아의 주술 그릇(6∼9세기), 중앙아시아의 질그릇(10∼11세기), 지중해의 눈의 우상(기원전 40세기), 인도의 설화 석고(13∼17세기), 산스크리트어 상감 녹유 사리함(13∼14세기), 중앙아시아의 질그릇(12∼14세기). 신창섭 기자 bluesky@
바라캇 서울 갤러리에 전시 중인 고대 문자 유물. 페루 모체문명 채색 화병(5∼9세기·왼쪽부터)부터 중국의 산스크리트어 사리함(13∼15세기), 메소포타미아의 주술 그릇(6∼9세기), 중앙아시아의 질그릇(10∼11세기), 지중해의 눈의 우상(기원전 40세기), 인도의 설화 석고(13∼17세기), 산스크리트어 상감 녹유 사리함(13∼14세기), 중앙아시아의 질그릇(12∼14세기). 신창섭 기자 bluesky@
바라캇 서울 갤러리 ‘수행하는 문자, 문자의 수행자’ 展

이집트 象形… 수메르 쐐기…
산스크리트어 등 40여점 선봬
신성시 되었던 ‘특권의 상징’

타이포그래피에 조형성 계승
안상수·노지수 실험作 나란히


금석문(金石文)은 철이나 청동 등의 금속성 재료나 석재에 새겨진 고대사회의 글을 말한다. ‘금석학’에 조예가 깊었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인 ‘추사체(秋史體)’를 창안한 것은 당대 확인할 수 있었던 조선과 중국의 금석문에 나타난 오래된 필법을 두루 연구한 결과다. 김정희가 고대 문자에 그처럼 천착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사회는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이 곧 권위와 특권의 상징이었던 시절이었다. 각 문자에 담긴 의미는 주술과 같은 힘을 가졌다고 믿었기에 문자와 책은 모두 신성시됐다.

이 때문에 당시 문자를 다루는 이는 능숙해질 때까지 ‘수행(修行)’을 거듭했다. 고대 문자는 실용적인 수단인 동시에 예술 작품이었고, 더불어 제의적 도구로 사용되는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다.

대표적인 상형 문자인 고대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hieroglyph)의 경우를 보자. 옛 이집트인들은 죽은 이의 관에 미라와 함께 ‘사자(死者)의 서’와 같은 장례문서(葬禮文書)를 안치했다. 이는 사후 세계의 여정을 안내하는 문서였다. 삽화와 조화를 이뤄 미술품으로도 가치가 있었으며, 부활과 영생을 위한 주문과 기도 등 제의적 기능도 지녔었다. 따라서 문자는 정보 전달뿐 아니라 예술로서 아름답게 형상화되어야 했으며, 강력한 주술적 힘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쓰임에 있어 점점 문자의 실용성과 보편성이 강조되고, 오랜 시간 단순하고 추상적으로 진화했다. 문자의 실용적 면모만이 살아남았고, 예술로서의 성격이나 제의적 역할은 미술, 종교, 과학 등 다른 분야로 넘어갔다.

그러면 문자가 지녔던 예술적, 제의적 기능은 모두 사라진 것일까. 문자 이전의 상징이 담긴 고대 유물과 수메르의 쐐기문자, 이집트 상형문자나 산스크리트어 등 고대문자에 담긴 ‘예술’과 ‘주술’이 현대에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 추적하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바라캇 서울 갤러리는 2018년 1월 28일까지 ‘수행하는 문자, 문자의 수행자’전을 개최한다.

전시장에서는 문자 이전의 상징이 담긴 고대 유물과 수메르의 쐐기문자, 이집트 상형문자나 산스크리트어를 포함한 총 40여 점의 주요 고대 문자 예술품을 선보인다. 그중에는 움푹 파인 상형문자가 고전적으로 디자인된 ‘이집트 12왕조 고위 관리의 수필 명문 석비’ 같은 고대 유물도 있다. 이 석비에 쓰인 상형문자는 조선시대 금석학자들이 비문을 연구했듯 후대 이집트 필경사의 연구 대상이 돼 문자체 모델로 발전하기도 했다.

또한 전시에는 한글의 조형성을 끊임없이 실험해온 한국의 대표적인 시각디자이너인 안상수와 독특한 시각으로 한글의 조형성에 접근하는 노지수, 이야기와 상징의 기호들을 실험하는 이푸로니 작가의 작품도 고대 예술품과 함께 모습을 보인다.

의미전달의 수단이라는 실용적 기능을 넘어 문자를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글자의 예술적 성취를 중요시하게 여겼던 고대사 속의 장인과 현대의 타이포그래피 작가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전시에 참가하는 노지수 작가는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고대 오리엔트에서 광범하게 사용된 설형문자에 흥미를 느끼며 타이포그래피의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됐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 분들은 타이포그래피 작가의 작품과 세계 각국의 고대 문자 예술품을 나란히 감상하며 시공간을 넘어서는 문자의 예술적이고 제의적인 성격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바라캇 서울 갤러리는 최정상급 고대 예술품 컬렉션을 보유한 150년 전통의 바라캇 갤러리가 런던, 로스앤젤레스, 아부다비에 이어 지난해 10월 서울에 오픈한 전시 공간이다.

바라캇 갤러리는 그동안 시대와 지역을 망라하는 4만여 점의 수준 높은 컬렉션을 완성하며 고대 예술에 집중해 왔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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