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 한양대 교수·행정학

대선 공약일지라도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 프랑스의 ‘원전(原電) 단계적 축소 보류’는 탈(脫)원전 공약을 고수하려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 크다. 한국원자력학회도 18일 성명을 통해, 정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안은 비현실적인 목표 제시에 불과하다며 ‘에너지 전환의 목표는 탈원전이 아니라 탈탄소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의 이번 전력수급 계획을 보고받은 여야는 모두 불만이다. 한쪽은 방향은 맞지만 내용이 충실치 않다고 지적하고 다른 한쪽은 잘못된 방향을 질타했다. 에너지는 산업의 동력이고 서민에게는 난방이다. 국가 에너지 대계(大計)가 정치권의 공방에 너무 예민하게 노출돼 걱정된다.

우선, 에너지 소요량에 대한 정부의 예측에 대해 논란이 많다. 당국은 사회적 논란을 의식해 기존의 예측 모형을 그대로 적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특이성으로 증폭된 깊은 불확실성이 있어 전력 수요 예측이 어렵다. 논란을 피하기 위한 전례 답습은 경고도 대응도 되지 못하는 허사일 뿐이다.

둘째, 경제 급전 일변도에서 환경 급전의 관점을 적용한 공급계획은 시대적 흐름상 당연하다. 석탄 발전을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선진국의 일관된 추세다. 문제는 비용과 경쟁력의 관점에서 방향과 속도를 스마트하게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저 발전원인 원자력의 발전용량을 급격하게 줄이는 건 상책이 아니다. 더욱이 LNG 가격은 변동성이 크고, 재생에너지는 비용과 국제 경쟁력 차원에서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셋째, 수요 관리는 에너지를 아끼자는 차원에서는 당연하지만, 정부의 그늘이 너무 크다. 다양한 사정이 있는 에너지원의 세율과 가격, 그리고 급전 지시(DR) 등은 정부의 자율적 재량에 노출돼 있다. 전력의 수급이 정부의 지나친 재량적 행정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은 전체 산업에 깊은 충격과 교란을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기 요금 인상 문제다. 정치권에서는 수요를 줄이기 위해 요금이 올라야 한다는 측도 있고, 발전이 야기하는 외부성을 적극 도입해 요금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반대편에서는 정부의 발표보다 현실적으로 요금이 훨씬 더 오를 것으로 우려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값싸고 질 좋은 전력의 공급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이번 전력수급계획은 두 가지 측면에서 특별히 아쉽다.

먼저, 국가 에너지 수급의 시장 친화성 제고에 대한 심모원려가 부족하다. 수많은 사람의 지혜와 열정이 차고 넘치는 시장(市場)의 힘으로 전력 생산의 조합, 전력 유통의 방식, 가격 결정, 인센티브, 혁신의 초점 등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국가 에너지 계획의 근간을 짜는 데 가장 중요한 분석적 접근이 부족했다. 수요 예측이 보다 다양하고 화려하면서 기법상으로 성숙해야 한다. 민감도 분석도 적극 도입해야 하고 여러 시나리오도 상정해야 한다. 또한, 균등화 에너지 비용(LCOE)에 따른 개념들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치밀한 노력과 집중력이 몇 겹으로 쌓이고 검토되는 분석적이며 체계적인 에너지 기획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대통령이 바뀌고 국회가 바뀌었다고 해서 국가 에너지 대계가 매번 바뀌어서는 안 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용기 있는 ‘탈원전 보류’ 결단이 우리 정부에 많은 것을 시사하는 요즘이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