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도로·전화·인터넷 사업의 공통점은 망(網)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만일 독점사업자가 망을 틀어쥐고 신규 진입을 막거나 폭리를 취한다면 공익은 위협받는다. 영미권에선 진작 ‘커먼 캐리어(common carrier)’ 개념으로 적절한 규제를 해왔다. 미 연방법원의 정의로는 ‘공공 편의 증진을 위해 정부의 인가를 받은 기업’이다. 미국이 19세기 철도사업자에게 경쟁 사업자의 진입·이용 배제를 금한 것이 초창기 예다.
인터넷 시대에 들어 커먼 캐리어 정신은 ‘망중립성(net neutrality)’에 담겼다. 통신사업자가 망 사용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으로, 2003년 팀 우 컬럼비아대 교수가 처음 썼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채택한 망중립성을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폐기했다.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인터넷서비스 사업자(ISP)를 산업 분류상 ‘타이틀1(기간통신사업자)’에서 ‘타이틀2(부가통신사업자)’로 바꿔 커먼 캐리어 굴레를 풀어준 형식이다.
2년 만의 급반전은 정치게임 성격이 짙다. 3 대 2로 나온 FCC 표결에서 공화당 추천인사가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트럼프의 ‘오바마 지우기’란 얘기가 나온다. 망중립성 폐기를 주도한 아지트 파이 FCC 위원장은 미국 1위 통신사 버라이즌 출신이다. 사사건건 트럼프에게 반기를 들어온 애플·구글 등 실리콘밸리 기업에 대한 복수라고도 한다. 망중립성 도입 근거로 삼은 것이 ‘오픈 인터넷 규칙’이었다면, 폐기 정당성을 주장한 문건은 ‘인터넷 자유 회복’이었다. 찬반 진영은 평등·개방과 자유·탈(脫)규제라는 가치를 놓고도 맞서 있다.
양측 모두 ‘혁신’을 앞세우는 것도 흥미롭다.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으로 대표되는 거대 ICT기업의 성장 기반이 망중립성이었다. 없애면 아이디어뿐인 스타트업의 혁신성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 반면 통신사들은 “수백억 달러를 들여 망을 깔았는데 정작 과실은 콘텐츠·플랫폼 사업자들이 독식한다”고 불만이다. 실제로 시가총액 1∼5위를 ICT기업이 휩쓸고 있다. 폐지 측은 공공성 규제를 풀면 오히려 5G 투자와 미래 혁신으로 이끌 것이라고 반박한다. 묘한 것은 망중립성으로 큰 FANG의 침묵이다. 추가 비용을 내더라도 지배력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망에 얽힌 정치·경제적 논란은 국내에서도 언젠가 터질 이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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