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두고 먼저 가면 어떻게…”
부인·딸·장모 모두 잃은 남성
영안실서 엄마 확인한 20대女
기막힌 현실에 멍해 있다 통곡
“한 번에 치를 장례식장 부족”
유족들 “합동분향소 마련을”
21일 충북 제천시 ‘노블휘트니스 앤 스파’ 화재 현장은 유족들의 오열과 통곡으로 가득했다. 이 화재로 3대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사망자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은 밤새 눈물바다가 이어졌다.
이날 오후 3시 50분쯤 이 건물 1층 주차장에서 발화한 불과 연기는 민모(여·49) 씨와 어머니 김모(80) 씨, 딸 김모(18) 양 3대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갔다. 당시 지상 2층에 있는 여탕 손님들은 대피할 겨를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시신이 안치된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은 말 그대로 ‘눈물바다’였다. 한날한시에 부인과 딸, 장모를 잃은 남편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한 지인은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애정 넘치는 가족이었는데 너무나 허망하게 떠났다”며 울먹였다. 특히 딸 김 양은 대학에 합격한 여고 졸업반이었다. 김 양은 이 건물 헬스클럽에 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사로 아내를 떠나보낸 또 다른 유족 류모(59) 씨는 “목욕을 하러 갔던 아내를 잃고 나니 모든 것이 허망하다”며 “더는 이 나라에 살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었다. 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인 류 씨는 “숨진 아내의 시신을 확인해 보니 지문이 사라져 있었다. 아마 사우나 안에서 유리창을 깨려고 애를 쓰면서 손이 심하게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시신 손바닥이 심하게 훼손돼 있었던 탓에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류 씨는 “아내 시신을 확인했는데, 두꺼운 외투만 입고 있었다”면서 “옷가지라도 걸치고 탈출하려다 시간을 놓친 것 같아 더욱 가슴이 아프다”고 흐느꼈다. 류 씨의 아내는 불이 난 건물 2층 여자 목욕탕에서 발견됐다.
병원 장례식장 2층에 마련된 유가족 대기실에는 50여 명이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대기실 곳곳에서는 통곡과 오열하는 소리가 밤새 끊이지 않았다. 한 유족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전날부터 한 끼도 입에 대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대기실 구석에서 쪽잠을 자려다 눈이 감기지 않는지 뒤척이는 유족들도 눈에 띄었다. 일부 유족은 대기실 한쪽에 모여 장례 절차와 유족 모임 구성 등 향후 계획을 논의하기도 했다. 유족 중 한 명은 “한 번에 30명 가까운 사람이 숨져 제천에는 수용할 장례식장이 없다”면서 “시가 유가족 대표를 선출하도록 도와주고 합동분향소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5명의 시신이 안치된 제천명지병원 유가족들도 황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숨진 최모(여·46) 씨의 유족은 이날 22일 오전 7시쯤 장례식장 지하 임시 빈소에서 장례 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했던 최 씨는 대학생 딸, 고교 3년생 딸과 막내아들 등 3남매를 키우던 맞벌이 엄마였다. 고3 딸은 이번에 수능을 치러 대학에 합격했다. 최 씨의 지인은 “고인이 5남매 중 넷째 딸인데 다음 주 남매들이 모두 모이는 가족 모임을 할 예정이었다”며 “못 보고 세상을 떠나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이날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찾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사망자가 몰렸던 2층 여자 사우나 유리문을 서둘러 깼더라면 훨씬 많은 사람을 구했을 것”이라며 원망을 쏟아냈다.
김 장관은 이날 오전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제천서울병원을 찾았다. 한 유족은 “여자들이 모여 있던 2층 사우나 통유리만 먼저 깨줬으면 거의 다 살았을 것”이라며 “소방차도 왔는데 무엇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소방관들이 무전기만 들고 허둥댔다”며 “소방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 피해가 컸던 것 아니냐. 이번 화재는 명백한 인재이니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지병원 장례식장에 있던 한 유족은 “매번 재발 방지를 하겠다고 떠들기만 하지 실질적으로 되는 게 없는데, 국민은 누굴 믿고 살아야 하는지 마음이 찢어진다”고 울부짖었다. 김 장관은 “개선책을 강구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제천 = 김성훈 기자 powerkimsh@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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