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지음, 류승경 편역 / 수오서재

1950년대 미국 사회에서 ‘모지스 할머니’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소비됐다. 1860년생인 모지스는 일흔여섯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여든이 넘어 첫 전시회를 열고 100세를 넘겨서까지 왕성하게 그림을 그린 미국의 할머니 화가다.

본래 자수를 했는데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지면서 자수 실을 바늘에 꿰기 어려워지자,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골 농장에서 버터를 만들고 감자 칩을 튀기며 앞치마를 두른 채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의 모습에 미국 사회는 열광했다. 유쾌한 유머를 구사하는 활기찬 할머니는 단박에 바람직한 노후의 아이콘이 됐으며 TV 방송과 라디오 등에 등장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 책은 모지스가 92세가 되던 1952년에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가 그린 그림이 백악관에 걸리고, 그가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가 1억 장이 팔리고, 타임지의 표지 모델이 되고, 미국 가정에서 그의 그림이 새겨진 커튼이나 그릇 등을 쓰고 있을 때였으니 왜 안 그랬을까. 책은 모지스 할머니가 풀어놓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고다. 일기를 쓰듯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글과 그림을 엮어 이 책을 펴냈다.

경어체로 번역된 책 속의 이야기는 짧고 문장은 소박하다. 에피소드가 크게 흥미로운 것도 아니고, 사유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특별하지도 않다. 그저 손주 열한 명과 증손주 열일곱 명을 둔 할머니가 과거를 떠올리며 들려주는 담담한 얘기다.

책에 실린 그림은 글보다는 특별해 보인다. 시골 마을과 목장을 즐겨 그렸던 모지스는 원근법을 무시한 채 전경과 배경을 자세하게 그려 넣는 독특한 화풍을 구사했다. 그의 그림에는 자연과 사람이 있다. 시골 마을 풍경을 담은 따스한 분위기의 그림은 자연스럽게 추억과 회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노인들의 얘기는 다 같다. 노인들에게는 지금보다 과거가 훨씬 더 나았다. 모지스 할머니가 들려주는 얘기는 거개가 따스했던 과거의 추억이다. 모지스는 책 뒤쪽의 저자 후기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우리가 정말 발전하고 있는지 때로는 의문이 듭니다. 지금보다는 여러모로 느린 삶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좋은 시절이었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삶을 더 즐겼고, 더 행복해했어요. 요즘엔 다들 행복할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모지스는 독자들에게 줄곧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충고를 건넨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한다”고 썼다. 여러모로 부러운 삶이 아닐 수 없다. 288쪽, 1만 3800원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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