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버전스 / 피터 왓슨 지음, 이광일 옮김 / 책과함께
에너지 보존법칙·진화론 나온
1850년대는 신기원 열린 시기
과학간 ‘컨버전스’시작으로 봐
과학의 전개 연쇄적 파고들며
지식 체계에 내재한 통일성과
향후 ‘융합의 끝’ 까지 내다봐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의 하나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열역학 제1법칙)은 19세기 중반 15명 이상이 동시에 발견했다. 과학사 연구자인 토머스 쿤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동시 발견’이라는 현상 중에서도 그야말로 놀라운 사례”라고 말한다.
이처럼 뉴턴의 기계적인 물리학에 종언을 울린 열역학 제1법칙의 발견은 열, 광학, 전기, 자기, 음식과 혈액의 물질대사 등을 둘러싼 당대의 발견들이 하나로 통합돼 가능했다. 엔트로피 법칙으로 불리는 열역학 제2법칙도 당시 과학에선 비(非)과학으로 무시하던 수학의 확률과 결합하면서 나올 수 있었다. 우주는 항상 무질서(엔트로피)가 증대되는 방향으로 흩어지며 생명만이 그것을 거슬러가고 그러자면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엔트로피의 법칙은 이후 우주론과 철학·문학 등 인문학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는 컴퓨터 과학과 결합해 정보 자체도 엔트로피 법칙이 적용되며, 더 나아가 ‘DNA 컴퓨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열고 있다.
인류 문화·과학사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온 다윈의 진화론도 마찬가지다. 천왕성을 발견한 독일 출생의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의 성운 중에는 더 오래됐고 ‘진화한’ 것이 있다는 발견이 자연선택이라는 생명체 진화론의 탄생에 영향을 준다. 진화론은 이처럼 천문학을 비롯해 지질학, 고생물학, 인류학, 지리학, 생물학을 하나로 버무려 나올 수 있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진화론이 나온 1850년대는 인류의 지적 차원의 모든 측면에서 일대 신기원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다양한 분과 간의 연계와 중첩이 처음으로 근본적인 두 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차원을 추가하며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지적 전환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바로 과학 간의 ‘컨버전스(convergence)’의 시작이었다. 우리말로 통섭·융합·수렴 등으로 번역되는 컨버전스는 여러 가지 것이 통일이나 단일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 혹은 여러 기술이나 성능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뜻한다.
‘생각의 역사’ ‘거대한 단절’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사를 쓴 저널리스트 출신 저자는 1850년대에서 시작해 150년간 과학의 역사를 바로 컨버전스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현대 과학사가 다양한 분야의 방대하고 복잡한 이야기 같지만, 컨버전스라는 관점을 통해 현대 과학사를 들여다보면 마치 잘 짜인 그물처럼 각 분야 간 관계성, 통일성, 그리고 일관된 서사적 질서를 통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과들은 서로 융합하고 통합되면서 독특한 거대 서사(master narrative), 즉 우주의 역사를 종국에는 드러낼 것이라고 본다.
물리학과 화학의 결합은 오래됐고, 이미 연계가 이뤄진 양자화학과 분자생물학, 우주 진화의 초기 역사를 밝혀낸 입자물리학과 천문학, 동물생물학에서 큰 진전을 이룬 소아과학, 물리학과 화학은 물론이고 경제학과도 손을 잡은 심리학, 조화를 모색하고 있는 유전학과 언어학, 식물학과 고고학, 기후학과 신화학 등 그 사례는 무수히 많아지고 있다.
이는 근래에 부각되는 ‘빅 히스토리(Big History)’를 연상하게 한다. 과학과 인문학을 하나의 틀에서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다. 또 일체의 과학을 하나의 통일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통일과학(unified science)과도 일맥상통한다.
책은 아인슈타인도 물리학에 수학 지식을 접목해 시간과 공간을, 질량과 에너지를 통합할 수 있었음을 드러내는 등 다양한 분야, 수많은 과학자의 세세한 활동까지 포착해 탐구한다. 과학자의 발견에 머물지 않고 그 지식이 다른 분야의 지식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떤 분야의 과학자가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발견했는지를 연쇄적으로 파고들며 현대 과학이라는 지적 체계에 내재한 거대한 통일성을 그려낸다.
나아가 생명 자체를 물리·화학적 작용의 총합으로 본다든지, 혹은 생명은 자신에 대한 정보를 복제하고 전파하는 존재로 계속 에너지를 소비함으로써 평형을 유지하지만 나머지 세계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든지, 예술과 윤리, 보살핌 등 가장 인간적인 측면까지 화학과 정보의 차원으로 해석하고, 사회물리학의 출현까지 얘기한다. ‘정신적 상태’마저 우리의 뇌가 가동하도록 내장된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여기게 될 수도 있어, 컨버전스의 세상은 새로운 정치적·사회적·윤리적 딜레마를 우리에게 안겨준다. “미래에는 어떤 인간이 존재할까?”라는 존재론적 질문 앞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
이쯤 해서, 인간의 모든 것은 생물학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미국 하버드대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떠오른다. 소위 과학 환원주의, 즉 모든 것은 과학으로 설명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철학 등 인문학 쪽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인류의 미래를 바꿀 컨버전스는 어느 정도 근본적인 수준에서 환원주의를 사실로 전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현재 발견된 생물학적 과정들의 복잡성의 수준과 다양성은 환원주의적 방식 말고는 설명될 수 없다고 말한다. 어쨌든, 저자는 지난 150년간 과학의 진보를 컨버전스의 관점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704쪽, 3만3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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