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저명한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 아르노 그륀의 ‘복종에 반대한다’는 잘 읽히는 에세이이자 깊이 있는 인문서이다. 138쪽의 얇은 분량이지만 지적 자극과 깊은 통찰을 던지며 우리 자신과 시대 삶 전체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원본으로 태어나 복제품으로 죽는다.” 그륀이 인용한 18세기 영국 시인 에드워드 영이 쓴 한 대목으로 책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복종에 길들어 살아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평생 인간성을 억압하는 독재와 폭력을 연구한 독일의 대표적 지식인인데 유대인으로 나치를 피해 망명생활을 한 개인사가 복종 문제에 천착하게 한 듯하다.
부모가 사랑의 이름으로, 훈육의 목적으로 아이들을 억압하면서 복종은 시작된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들의 사랑을 잃게 된다는, 혹은 세상에 홀로 남게 된다는 두려움은 아이들을 쉽게 복종하게 만든다. 단순히 복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사랑으로 해석하고 복종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부모(권력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자아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 같은 메커니즘은 사회적 관계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권력에 대한 복종은 결국 자신을 그와 동일시해 자신을 잃어버리고 꼭두각시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사고는 제한돼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고, 현실은 권력자의 단기적 전망에 따라 제한되고 한정된다. 저자는 여러 심리학 연구·철학적 성찰을 짚어가며 주장을 해나가는데 부모나 권력에 복종하는 이들이 성공할 경우 자신이 타인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약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결과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복종에 맞서 싸우는 힘으로 ‘공감 능력’을 든다. 타인의 감정과 상황에 대해 함께 느끼고 이해함으로써 주변 세계에 공감적으로 관여하는 공감 능력. 이는 맹목적 복종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대항할 힘을 줄 뿐 아니라 감정 이입 능력을 끌어내 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사람들이 현혹된 복종에서 벗어나 진정한 공감의 세계로 나아갈 때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저자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주 리아체 마을을 공감을 통해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간 예로 들었다. 리아체는 이탈리아의 난민 정책에 반대하고 불법 이주자들을 받아준 곳이다. 그 결과 무비판적으로 복종할 때 생길 법한 범죄도, 사회적 질서의 붕괴도 일어나지 않았고 마을 고유의 정체성도 상실되지 않았다. 오히려 죽어가던 마을은 회생했다. 리아체 마을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일 볼로(Il Volo)’로 만든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유토피아는 리아체 마을 사람들의 공생과 같은 모습이다.” 용기와 관심, 열린 생각이야말로 복종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라는 결론. 공감을 향해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하다. 136쪽, 1만2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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