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2월 김대중(오른쪽 두 번째) 전 대통령 일행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서울대병원에서 차에 짐을 싣고 있는 장면. 이병훈 당시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는 이를 단독으로 촬영했으나 당시 정권의 보도지침으로 인해 지면에 싣지 못했다.   대한언론인회 제공
1982년 12월 김대중(오른쪽 두 번째) 전 대통령 일행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서울대병원에서 차에 짐을 싣고 있는 장면. 이병훈 당시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는 이를 단독으로 촬영했으나 당시 정권의 보도지침으로 인해 지면에 싣지 못했다. 대한언론인회 제공

- 취재 현장의 목격자들+ / 남시욱 등 지음, 대한언론인회 엮음 / 청미디어

군사 정권기·민주화운동 등
근현대사 지켜본 언론원로들
취재 회고담 34편 모아 출판

특종 비화·뒷이야기 등 담아
現 시국·국가 미래 걱정도


“박 대통령은 군 출신이어서 그런지 권위주의적인 언론관을 갖고 있었지만 출입 기자들에게는 대단히 소탈하게 대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가 하면 방 안에 담배 연기가 자욱하면 손수 창문을 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안한 노릇이지만 당시에는 파이프 담배가 유행할 때여서 나 역시 박 대통령 앞에서 예사로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에 청와대를 출입했던 남시욱 전 동아일보 기자가 쓴 글의 한 대목이다. 당시 남 기자는 이후락 비서실장의 소개로 박 대통령을 단독으로 만난 참에 유럽 순방 계획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사화해 특종을 했다. 남 기자의 글은 이런 ‘무용담’뿐만 아니라 가까이에서 지켜본 박정희 정권의 명(明)과 암(暗)을 균형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경제 개발을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노력했는지를 묘사하는가 하면, 정권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선거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언론사 간부들을 불법 연행했던 사실도 적었다.

나중에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문화일보 사장을 하는 등 언론계에 큰 족적을 남긴 남 기자의 취재 회고담은 책 ‘취재 현장의 목격자들+’에 담겼다. 이 책을 엮은 대한언론인회는 원로 언론인 600여 명을 회원으로 둔 모임이다. ‘명기자, 명데스크 못다한 뒷이야기’라는 부제를 지닌 동명의 책을 7집까지 냈다. 2017년 판인 이번 책은 34편의 글을 싣고 있다.

이석희 전 KBS 보도국장도 가까이에서 본 박 전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대해 증언한다. 이 전 국장의 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5·16 군사정변 때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는 장도영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설득하기 위해 함께 찾아갔던 백태하 대령이 장 총장을 권총으로 위협한 비사를 들려줬다고 한다. 이 회고담은 한기호 전 서울신문 정치부 기자가 쓴 글 ‘장도영 장군 50일’과 비교해 읽으면 매우 흥미롭다.

이병훈 전 조선일보 부국장 겸 사진부장의 ‘빛 못 본 특종사진’은 보도지침이 시행됐던 5공화국의 언론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이 전 부국장은 “신문에 나지도 않을 사진은 왜 찍느냐는 시위대의 항의가 최루가스나 돌보다 더 아팠다”고 회고했다.

민정기 전 중앙일보 기자는 언론인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변신한 과정을 담담히 기록했다. 그러면서도 청년기부터 60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을 읽어왔다는 말로 언론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표현했다. 그는 사후에 염라대왕이 이 세상에서 뭘 했냐고 물으면 “신문을 정말로 열심히 읽었다고 말할 것”이라고 적었다.

현재 대한언론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병대 전 KBS 보도제작국장은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과의 인연을 되돌아봤다. 문화로 서구를 정복하겠다고 큰소리치던 백남준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일화들이 가득하다.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지낸 호현찬 전 동아일보 기자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의 전반 인생은 오로지 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시종하였다. 지금 회고하면 무척 힘들고 고단했으나 그래도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세월이었다.”

대한언론인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신문 ‘대한언론’ 주필을 맡고 있는 박석흥 전 문화일보 편집국장 대우의 글은 원로 언론인들이 과거를 반추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역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박 전 국장은 “전직 대통령이 수감되고 기존 질서가 붕괴되는 시기에 대한언론은 대한민국 국가 정통성·체제 정당성·남북한 관계를 우려하는 회원들의 여론을 충실히 반영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번 책의 편집을 맡은 유자효 시인은 “현역 언론인이나 언론을 공부하는 학생 그리고 일반 독자들에게 좋은 읽을거리가 되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327쪽, 1만8000원.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