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종 경제산업부 부장

중국인 여성 S 씨는 국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정 기술 보유 업체인 B사에 입사했다. 목적이 있었다. 특급 보호 대상인 국가핵심기술을 빼내려 한 것. S 씨는 국책과제로 개발한 기술을 퇴사 전에 이메일, 인터넷 메신저, USB를 이용해 유출했다. ‘작은 USB 하나에 몇조 원을 담아 갈 수 있다’는 기술 유출의 실태를 잘 보여준다. 표적은 또 있었다. 한국인 남편이 다니는 디스플레이 장비 개발업체의 군사용 기술을 빼내 중국 회사에 넘기려 했다. 국책기업,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기술유출 방지가 ‘총성 없는 경제 전쟁’ 시대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산업은 원천 자원도, 거대 자본도 없이 피땀 흘려 축적한 고급 기술 하나로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례처럼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고 관련 산업의 성장잠재력 또한 뛰어난 국가핵심 산업기술이 유출됐을 때의 파장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른 나라로 유출되면 국가 안전보장, 국민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어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로 지정돼 보호를 받는다. 그런데도 ‘세계 최대용량 빌딩용 첨단 에어컨 핵심기술 중국 유출 기도’ ‘액정표시장치(LCD) 생산장비 제조기술 해외 유출 기도’ 등 첨단기술 유출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대기업이나 국책성 기업을 대상으로 한 외국 기업, 경쟁기업의 기술 유출 시도뿐만이 아니다. 대기업과 견줘 상대적으로 보안체계 수립이 미흡하고 기술보호 인식이 약한 중소·중견기업은 더 심각하다. 국회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 김정훈(자유한국당)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최근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2012년부터 5년간 중소기업 기술 유출 피해는 파악된 것만 1조 원에 육박한다. 통상 이런 기업들은 전문 법무팀조차 꾸리지 못하고 있는데 기술을 탈취당하면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타격을 받는다. 기술 유출은 절취도 많지만, 핵심인력을 높은 대우를 제시해 통째로 빼내는 방식도 늘고 있다. 지난해 기술 유출 방식에서 스카우트는 36.5%를 차지했다. 원전 산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한국의 반도체 기술 확보에 혈안이 돼 ‘3년 동안 지금 받는 것보다 3배, 5년 동안은 5배 더 주겠다’고 제안해 많은 인재를 소리소문없이 끌고 간다. 원전산업도 비슷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내수 부진 속에서도, 연간 무역액 1조 달러에 재진입한 동력은 기술력을 토대로 품목 다변화, 고부가가치화를 살린 덕분이다. 차세대반도체, 차세대 디스플레이, 바이오·헬스, 항공우주, 첨단신소재 등 신산업의 ‘약진’에 힘입은 바 크다. 기술 육성, 보호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는 지표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신입 기술인력의 66%가 1년도 안 돼 퇴사하는 등 기술인력 부족 현상에 허덕이고 있다. 첨단기술은 끊임없이 빼내 가려 하고 기술인력 육성은 바닥 기초가 부실한 샌드위치 형국이다. 기술보호를 위한 시스템 재정비와 함께 인력 육성·처우 개선부터 짚어볼 때다. 기술 강국의 청사진을 갉아먹는 국가적 해악을 방치하고서는 4차 산업혁명 대비도 헛구호이고 과실(果實)도 향유하기 어려운 건 불문가지다.

horizon@
이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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