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정치부장

전후 단극체제 구축한 미국과
신흥제국 부상하는 중국 간에
근본 화해나 중간지대 불가능

외교·안보 위기 자초한 文정부
한·미동맹 선택 꾸준히 힘 키워
한반도 운명 결정 때 대비해야


제국의 본질은 팽창이다. 다른 민족을 통치·통제하는 본질을 구현하기 위해 영토나 영향력이 국경을 넘어 외부로 뻗어 나가야 한다. 제국은 정체하거나 축소되는 순간 붕괴의 길로 접어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무력에 기초한 전형적 제국은 사라졌다. 그러나 주권국가체계 속에서 여전히 제국은 존재한다.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세계를 단극체제(Monopolar system)로 재편했다. 전 세계에 686개의 군사기지(비밀기지 포함 시 800여 개)를 두고 11척의 항공모함(2척 추가 건조 중)을 운용하는 등 5대양 6대주를 장악하고 있다. 미국이 새로운 제국의 등장을 용납하는 것은 곧 쇠퇴로 접어드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던 소련의 뒤를 이어 사회주의 신흥제국을 꿈꾼다. 중국에 팽창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중국이 경제 세계화에 참여하되 영원히 패권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후진타오(胡錦濤)의 ‘화평굴기(和平굴起: 평화롭게 우뚝 선다)’ 전략을 접고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나아간 것도 이 때문이다. 시진핑 대국외교의 두 방향이 팽창을 겨냥한 ‘신형 국제관계의 건설’과 ‘인류운명공동체의 건설 추진’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국가안보전략’은 양국 대립각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는 현재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의 힘에 도전하는 경쟁국(rival power)으로 규정했다. 특히 중국에 대해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지위를 대체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지역 질서를 재편하려 한다”며 “약함은 충돌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고, 반대로 ‘무적의 힘’이 방어를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중국 외교부의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누구도 중국이 자신의 이익에 손해인 쓴 열매를 삼키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로 맞섰다.

미국과 중국 간에 근본적 화해는 불가능하다. 힘에 의한 균형과 필요에 의한 공존이 있을 뿐이다. 이미 중국은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란 팽창 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이란 대중국 봉쇄 시스템을 구체화하고 있다. 중국의 해상 팽창에 최대 걸림돌은 한·미·일 협력체제고 가장 약한 고리는 한국이다. 중국은 팽창을 위해 한국을 흔들어 봉쇄라인에 균열을 내야 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가 없었더라도 중국은 다른 빌미로 한국을 회유하고 압박할 것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일 ‘살얼음판을 내딛는 기분으로 나선 국가 정상과 외교부 장관에게 응원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균형론과 운전대론을 내세우며, 중국과 평행선을 달리는 미국이란 제방에서 내려와 살얼음 낀 강 위로 올라선 건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중국의 ‘일대일로’에는 적극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한·미·일 군사동맹 불추진’을 포함한 3불 정책도 부족해 대북 최대 압박을 강조하는 미국 면전에서 중국과 ‘한반도 전쟁 불가’를 합창했다. 그러나 정부가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자화자찬을 늘어놓던 그 순간 중국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으로 폭격기와 전투기를 출격시켰고, 한국 단체관광을 다시 금지했다.

홀대에 이어진 도발은 중국의 본질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 외교의 방향을 제시해준다. 중국은 팽창을 위한 외교·안보 전략에서 한국이 어떤 성의를 보이더라도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도 중국 봉쇄 정책에서는 마찬가지다. 두 나라 사이에 외교·안보상의 중립지대는 없다. 신냉전체제 도래는 원치 않는 흐름이지만 한국은 이를 막거나 조정할 역량이 없다. 한국은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은 당연히 한·미 동맹이다. 중국이 아무리 흔들어도 한국의 선택은 불변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중국에 심어줘야 한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양국 간에 새로운 경제·문화 교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아직은 한·미 동맹의 우산 속에서 힘을 키워야 한다. 영원한 제국은 없다. 꾸준히 국력을 키워 두 제국 체제가 흔들릴 때 한반도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하루라도 빨리 ‘자주’란 과욕과 교조화된 ‘평화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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