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시킨 여성들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데 이어 수많은 저명인사를 추락시키고 있는 성추행 연쇄 폭로 파장이 AP통신 선정 올해 톱 뉴스에 올랐다. 미 온라인 사전 메리엄 웹스터는 올해의 단어로 페미니즘을 꼽았다. 2017년은 성난 여성(Angry Women)의 해로 기록할 만하다.

미국 여성들의 반란 조짐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식 하루 뒤 워싱턴을 비롯해 미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여성행진에 나서면서부터 감지됐는데, 도화선 역할은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했다. 그가 30여 년간 여배우들을 성추행·폭행했다는 사실이 지난 10월 폭로된 후 SNS에 “나도 당했어”라는 의미의 해시태그 미투(#MeToo) 캠페인이 시작됐고 이후 영화업계 및 언론계, 정계 유력 인사들의 성 추문 관련 연쇄 추락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와인스타인은 회사에서 쫓겨났고 NBC방송 ‘투데이’ 간판 앵커 맷 라우어와, 가장 지적인 TV 인터뷰 진행자로 정평이 났던 찰리 로즈는 불명예 퇴장을 했다.

미투 태풍은 정계에서도 거세 2018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당에 초비상이 걸렸다.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한 사실이 공개된 후 민주당 존 코니어스 하원의원은 정계 은퇴, 앨 프랭컨 상원의원은 의원직 사퇴 입장을 밝혔다. 앨라배마주 연방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로이 무어는 미성년자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면서 텃밭을 민주당에 내줬다.

미투 캠페인은 미 흑인여성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제안한 캠페인이다. 그는 2007년 브루클린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 시스템에서 소외된 유색인종 피해자를 돕기 위해 ‘미투’라는 구호를 사용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수치심 때문에 숨기는데 주위에서 ‘나도 당했어’라며 공감을 해주면 용감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제 ‘미투’ 캠페인이 사회운동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페미니즘 도서 열풍이 거셌고, 가구업체 한샘에서의 성폭행 사건을 비롯해 문화 예술계의 성희롱 사건도 여럿 공개됐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로 확산되는 미투 캠페인처럼 거대한 사회적 조류를 형성하지는 못하는 것을 보면 아직 분노의 에너지가 임계치에 다다르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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