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섹스, 다이어트 그리고 아파트 원시인 / 마를린 주크 지음, 김홍표 옮김 / 위즈덤하우스

‘육식하고 탄수화물 멀리’
‘구석기 추종論’은 착각
인간 유전자는 지금도 진화
현재 생활에 최적화돼 있어

구석기땐 유제품 안먹었지만
현대인 우유 소화력 높아져
現 인류의 ‘몸’ 배척 말아야


모든 건 구석기 시대(Paleolithic Era)의 ‘소환’에서 시작된다. 구석기 시대라 하면 인류 발달 과정 중 가장 앞선 시기를 말한다. 대략 70만 년 전부터 신석기 시대의 경계인 약 1만 년 전까지의 기간. 더 넓게는 직립보행을 하는 인류의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출현한 것으로 짐작되는 약 300만 년 전부터 농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의 엄청난 시간이다. 인류 발달사를 그린 도표의 맨 앞에 위치하는, 돌출된 입에 털이 많고 팔다리가 길며 주로 동굴에 살던 원시인이 돌아다니던 그 시절이다.

이 구석기 시대가 2010년을 전후해 미국에서 큰 화제에 올랐다. 더욱 정확하게는 ‘구석기 다이어트’가 쟁점이 됐다.

구석기 다이어트는 쉽게 말해서 구석기 원시인처럼 먹어야 건강해진다는 주장이었다. 이를 처음 공식적으로 제안한 사람은 1975년 ‘구석기 식단’이라는 책을 쓴 소화기관학자 월터 보에틀린이다. 이후 보에틀린의 주장을 계승하는 ‘구석기 다이어트’ ‘구석기가 답이다’ 등이 잇달아 출간됐다. 주장의 핵심은 구석기인들이 농경이 아니라 원시 수렵과 채집에 근거해 먹었듯이 탄수화물을 줄이고 육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이 2010년쯤, 돌연 화제가 된 것은 현대인의 성인병과 관련이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비만과 당뇨병 등 ‘문명병’은 탄수화물에 의존하는 식단 탓이라는 것이다. 농경사회 이후 인류가 탄수화물에 적응한 것은 고작 1만 년밖에 안 됐으며,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인류가 적응해왔던 것은 오히려 육식이므로 진화론적으로 익숙한 식습관으로 돌아가야 건강해진다는 논지다. 심지어 가공식품은 물론 우유와 치즈 등 유제품도 신석기 시대 이후 농경 및 목축 사회의 산물이므로 구석기인의 식습관에 맞지 않는, 건강에 반하는 식품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이자 생태학자인 저자는 이를 ‘구석기 환상’(Paleofantasy)이라며 철저히 배격한다. 그는 진화론에 맞서는 더 진보된 진화론을 바탕으로 구석기 시대에 관한 환상을 무너뜨리고, 또 구석기 식습관을 현재에 적용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를 일깨워준다.

식습관, 섹스, 운동, 육아, 가족문화 등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며 진화에 대한 착각을 바로잡는 가운데 저자가 제시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유제품과 침팬지다.

우선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의 새끼들은 태어날 때 몸속에 젖당 분해효소를 지니고 있다. 이 분해효소는 포유류가 젖을 먹을 때 소화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신생아가 커가면서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젖을 떼고 나서 5∼6세쯤 되면 더는 젖당을 소화하지 못한다. 성인이 되면 분해효소 생산이 신생아 때의 10%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반면, 몇몇 민족은 다른 집단보다 훨씬 많은 분해효소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구석기 식단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우유는 진화론적 적응이 끝나지 않은, 인간의 몸에 맞지 않는 식품이 된다. 그러나 저자는 “이는 진화의 속도에 대한 문제로, 우유 소화 능력은 인간 집단에서 빠른 진화를 보이는 가장 대표적인 예”라며 “우리의 조상 자체를 현생 수렵 채집인이나 대형 유인원 같은 모델로 한정 짓는 헛된 노력을 그만둬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 침팬지와 보노보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지 최소한 500만 년이 지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생식만을 목적으로 성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노보가 인간과 비슷한 습성을 획득했을 수도 있으나 영장류 중에서 인간과 가장 유연관계가 적은 벨벳 원숭이도 암컷이 임신하면 그 틈을 노려 교미할 상대를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어떤 특별한 성적 본능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선험적인 것일 필요는 없어지게 된다.

저자는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며 변화는 언제나 있었다”면서 “과거를 우리의 현재를 배척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464쪽, 1만80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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