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말과 언어를 다루는 기술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간 삶의 내면을 응시하는 깊은 사고와 이해에서 나온다는 점을 투고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우리 삶과 유리된 채 공연히 초현실적으로 매끄럽게 톡톡 튀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다는 것은 시를 쓰는 기술이 앞선 작품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심 최종심까지 오른 작품은 이창원의 ‘금요일기’, 홍경나의 ‘먼우물’, 최민주의 ‘그림자 동물원’, 이영란의 ‘짚’, 박은영의 ‘발코니의 시간’ 5편이었다. 이 중에서 피상적이고 관념적이며 감상적인 작품을 먼저 배제하고 나자 ‘짚’과 ‘발코니의 시간’ 2편이 남게 됐다.
‘짚’은 ‘집’이라는 말의 유사성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 시다. 짚을 감아줌으로써 감나무는 혹한의 겨울을 견딜 수 있고, 그 짚 속에 기어든 벌레들 또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시의 전체를 이루고 있으나 평이함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무에 짚을 감아주는 의미가 모성적 차원으로까지 승화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나무들도 영혼이 있다면/ 저 짚에 조용히 은거하고 있을 것이다’와 같은 결구 또한 평이하고 안이하다고 판단돼 결국 ‘발코니의 시간’이 당선작으로 결정됐다.
‘발코니의 시간’은 삶의 고통에 대한 견딤이 죽음의 고통 또한 견디게 해준다는 중의적 의미가 내포된 시다. 정년퇴직한 뒤 발코니에서 화초를 키우는 아버지의 현재적 삶과 암벽에서 풍장의 과정을 겪고 있는 죽음의 삶을 발코니의 통유리를 경계로 대비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동일성을 깨닫게 해준다. 자연적인 해체의 과정을 견디는 풍장 그 자체가 바로 오늘의 삶에서도 가장 요구되는 인내의 덕목이라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관념성을 풍장 문화라는 구체성을 통해 나타내고 있는 점이 이 시의 힘이자 장점이다. 신춘문예에 당선된다는 것은 마치 하나의 새로운 우주를 만난 듯한 기쁨일 것이다. 진심으로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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