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례적인 신년사를 발표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핵무력 완성’을 바탕으로 ‘미국을 겨냥한 핵 단추가 책상 위에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미국을 위협하는 한편, 남북관계 개선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한국 정부에 유화적 제스처를 보냈다.
평화의 제전으로서 평창동계올림픽을 치르려는 한국 정부에 북한은 선수단 파견을 암시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박을 돌파하는 전략적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한국을 봉쇄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이 미국의 북핵 강경 대응으로 한계에 부닥치자 한국과의 협상을 우회로로 선택해 미국을 견제하는 ‘통남봉미(通南封美)’ 전술로 바뀐 것이다. 이는 또 핵보유국을 기정사실화하면서 그간 강조해 온 핵·경제 병진 노선을 본격 전개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청와대는 바로 김정은 신년사에 대해 언제 어디서든 대화할 용의가 있다면서 ‘신중한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가 말했듯이 미국과의 조율을 거쳤다는 ‘환영’에 대해서는 더 살펴볼 여지가 분명히 있다. 이번 신년사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 있는 핵 강국’을 강조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김정은은 전혀 핵을 포기하거나 핵 정책을 바꿀 어떤 의사도 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핵무기는 실전 배치하면서 한국에는 평화 공세를 펼치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우리더러 핵을 가진 북한과 대화하자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태도에 따라 한·미 공조는 물론 미·중 및 한·중 관계도 영향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러한 북한의 전술 변화는 기본적으로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한국 정부를 자극해 한·미 공조 관계를 균열시키고, 미·중의 대북 제재 논의에 갈등을 유발하겠다는 계산에 기인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단 ‘두고 보자(We’ll see)’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고, 중국은 미국에 대한 핵 위협보다 남북관계 개선 등 평화적 메시지에 주목했다. 관련국들은 북한의 의도대로 벌써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 등 북한의 의도 파악에 분주하다. 이번 신년사로 인해 한·미·중이 강조해 온 북핵 불용 원칙과 공조 체제가 깨지면 안 된다.
지난해 12월 28일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2016년 공단 폐쇄 결정이 ‘적절한 과정과 합의’를 거치지 않은 통치행위였다며 개성공단 재개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한국은 미국과 보이지 않는 마찰을 겪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을 재가동할 경우 한·미 동맹의 위기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면서 한국의 개성공단 관여를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는 의사를 비쳤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금융 압박과 외교적 고립을 통한 최대의 압박 정책을 추진하는데 한국이 이탈(divergence)하는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북한의 목표는 명실상부한 핵보유국 지위 확보다. 일단 평화 공세로 미국의 예봉을 피하자는 위장 전술일 가능성이 크다. 평창에 북한 선수단이 오는 것은 분명히 반길 일이나, 결코 좋아만 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핵 폐기 없는 대화와 협상 운운은 북한의 또 다른 시간 벌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처럼의 대화 기회도 살려야겠지만, 이 때문에 한·미 공조에 문제가 생겨선 안 된다. 원칙을 제대로 관철하지 못하면 ‘이상한 평화’를 위해 핵을 가진 북한과 협상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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