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봉 前 국무총리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역사는 지속적 전쟁의 역사였다. 새해엔 그 결정적 전기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70년이라는 세월은 국민이 평화와 전쟁이라는 것에 착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복전(subversive war)과 통상전쟁에 더해 절대무기라는 핵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상태다. 한국은 고난 속에서도 나름대로 정치와 전략을 역사적 조건들에 부합하도록 총력을 다해 왔다. 국가적 집단의 존재 이유를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헌법으로 규정하고, 일관되게 구현해 나갔다. 그것이 성공을 거두었다. 문자 그대로 건국혁명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국제사회의 주류(主流)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 대가를 치른 것도 여느 역사적 예들과 마찬가지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한 대가 지불은, 북한의 끊임없는 전복 선전으로 원한(ressentiment)이라는 감정에 접합됐다. ‘좌파’는 그 감정을 충동해 스캔들을 조작해 내고, 증오를 증폭시켜 대통령 탄핵이라는 절정에 이르게까지 됐다. 이런 기류는 ‘촛불혁명’ 용어 속에 녹아 있다. 문재인 정권이 정권 차원에서 촛불혁명으로 규정한다면, 청와대는 ‘혁명위원회’가 되는 셈인가. 상해 임시정부를 건국으로 규정하면서,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70년의 ‘주류(主流) 세력과 역사’를 탄핵하는 데 이르려 한다. 국민주권을 넘어 ‘사람 중심의 체제’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 표현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내포된 본질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 말의 정치사상적 뿌리는 카를 마르크스에 있고, 흘러흘러 북의 주체사상으로 둔갑했다. 독립운동기 지식인들의 낭만적·종족적 민족주의와도 닿아 있는 이런 기류는 급기야 ‘하나의 민족’ 슬로건이 되고, 그 하나를 해치는 것이 ‘미국이라는 적(敵)’이라는 논리로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역대 정부가 북한을 주적이라고 규정한 것이 반민족적 처사로 단죄될 판국이다. 통일부와 외교부, 국가정보원은 물론 법무부·검찰 등의 ‘적폐 청산 TF’ 활동에는 이런 맥락이 뚜렷하다.

당면한 북핵 문제를 둘러싼 전쟁 위험을 어떤 외교적 수단으로 헤쳐 나갈 것인가. 정권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은, 북핵은 체제수호를 위한 수단이므로 핵 보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 측은 북핵 문제를 세계적 안보 문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면 미국은 정책적 패배를 자초하게 되는 것이며 ‘질서교란세력’(revisionist states)에 항복하는 결과가 된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노예국가’ 편에 서면서 중국의 국제정치적 하청업자의 길을 갈 것인지, 미국과 잠정적 동맹이 아니라 확실하고 지속적인 동맹을 다질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제재를 통한 북핵 해체든, 군사적 방법에 의한 핵 제거든, 미국이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그 충격은 북한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금의 남한 정권도 치명적 타격을 받을 건 분명하다. 문 대통령은 월남 패망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진실의 승리를 확인하고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 아직 그런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면 곧 닥칠 패닉에 어떻게 대응할지 걱정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신생 독립국 중에서 유례없는 기적 같은 성취를 이뤄낸 대한민국이 허물어지지 않고 계속 전진하기 위한 지혜가 더 절실한 2018년이다. ‘민족이 무엇이든 자유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어느 탈북 여성의 목소리를 가슴에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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