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권 전국부장

자산(子産)이라는 중국 춘추시대 때 정(鄭)나라 재상이 있었다. 정나라는 진(晉)나라와 초(楚)나라 두 강대국 사이에서 초가 오면 초와 동맹하고, 진이 오면 진과 동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은 나라였다. 내부적으론 권력 투쟁이 치열했다. 나라가 안팎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자산이 재상에 올랐다. 그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실리 외교로 나라의 주권을 지켰고, 중국 첫 성문법인 ‘형서’를 공포해 국가 기강을 바로잡았다. 형서는 왕족이나 귀족의 암묵적 양해 속에 이뤄졌던 형벌을 법에 근거해 처벌하겠다는 법조문이다. 자산의 정책 덕분에 정나라는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됐다.

이후 자산은 병이 들자, 자신의 뒤를 이을 자대숙(子大淑)을 불러 이렇게 당부했다. “정치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네. 하나는 관대한 정치, 다른 하나는 엄격한 정치라네. 둘을 비유하면 불과 물과 같네. 불의 성질은 엄격하고 겉보기에 무섭기 때문에 사람들이 두려워해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다네. 그래서 불 때문에 죽는 사람은 적네. 반면 물은 성질이 약해서 사람들은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네. 이 때문에 오히려 물로 죽는 사람이 더 많네.” 몇 달 후 자산이 숨을 거둔 뒤 자대숙은 엄격한 태도로 백성을 대하는 것을 망설이다 결국 관용의 정치를 펼쳤다. 그러자 금세 도적이 설치기 시작했고, 작지만 강한 나라였던 정나라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대숙은 그제야 “처음부터 자산의 충고를 따랐다면 이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을 텐데…”라고 후회했다.

지난해 5월 취임 후 행적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불’보다 ‘물’에 가깝다. 문 대통령은 29명이 사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발생 다음 날 현장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유가족의 욕이라도 들어드리는 게 지금 대통령이 할 일”이라고 했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 기념식 때 유족을 안아주고, ‘11·15’ 포항 지진 이재민과 함께 점심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피해자뿐 아니라 국민은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잇단 대형 사건·사고 피해자와 유가족이 진정 바라는 것은 ‘가족을 잃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사고 때마다 정부는 현장 점검을 강화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그때마다 더 큰 사고가 발생해 정부를 무색하게 만드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마지막 날에도 제주 추자도 바다에서 어선 전복 사고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다. 사고 어선은 불법 어로 행위가 들통나는 게 두려워 비상시 위치를 확인하는 자동위치발신장치(V-PASS)를 끈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불감증은 약도 없는 고질병이 됐다.

2018년 올해는 방심과 안전불감증을 추방하는 원년이 돼야 한다. 안전하게 짓는 것이 빨리 짓는 것보다 더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되는 세상이 열려야 한다. 안전불감증에 따른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이든 개인이든 반드시 패가망신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도록 엄격한 규제와 처벌이 있어야 한다. “누굴 탓하려는 게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게 제천 스포츠센터 유가족의 눈물 어린 호소다. 문 대통령은 안전 분야에서만큼은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는 ‘불’ 대통령이 돼야 한다.

ybk@
유병권

유병권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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