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기장과 부기장이 자동항법장치에 운항을 맡겨 두고 잡담하는 것을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기장은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주의하기만 하면 되고 목적지까지 가는 먼 길은 자동항법에 맡기기도 한다. 50년 이상 자산관리를 하면서 먼 길을 가야 하는 연금도 자동항법장치에 맡기면 좋다. 연금 축적과 인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면밀하게 관리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첫째, 연금 상품은 오랜 기간 계속 잘 관리하기 어렵다. 성과가 좋지 않은 펀드는 교체해야 하고, 주식이나 채권의 비중에 관한 자산 배분비율도 결정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쉽지 않다. 자칫하면 펀드 교체 시기를 놓친다. 주식시장이 좋지 않을 때 주식비중을 줄여 놓고 있다가 이 사실을 까맣게 잊기도 한다. DC(확정기여)형 퇴직연금에 처음 가입하는 사람들을 보면, 주식시장이 나쁠 때는 원리금 보장상품을 많이 택하고 나서 이후에 주식시장이 좋더라도 처음 그대로 둔다.

둘째, 연금자산관리를 열심히 하더라도 연금을 운용하는 ‘나’라는 존재가 비합리적인 면이 많아, 불완전하다. 이는 2017년 올해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 시카고대의 리처드 탈러 교수가 밝힌 바 있다.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자신이 펀드를 선택해 놓고도 자신의 포트폴리오보다 다른 사람들의 평균적인 포트폴리오를 더 선호한다. 미국의 경우 개인이 선택해서 운용하는 퇴직연금상품 수익률보다 자동으로 가입되는 상품(디폴트 옵션)의 수익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자신의 위험 선호조차 잘 모른다.

셋째, 시간에 따라 자산 배분을 변화시키는 동적 자산 배분을 개인이 하기 어렵다. 20, 30대에 비해 50, 60대에는 위험자산 비중을 줄여가야 한다. 나이에 따라 자산 배분을 바꾸어가야 하는데 개인이 적절한 비중으로 적절한 때에 실행하기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높은 주식비중을 그대로 가져가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낮은 주식비중을 유지하기도 한다. 제대로 된 위험관리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여러 가지 애로를 해결해주는 게 연금의 자동항법장치다. 한번 잘 가입하고 그냥 둬도 된다. 대표적인 게 TDF(Target Date Fund)이다. 2045년을 목표로 한 TDF는 2018년부터 27년간 위험자산 비중을 동적으로 자동으로 줄여가는 상품이다. 상품마다 줄이는 경로가 다르지만 목표 일에 가까울수록 줄여나가는 것은 공통된다. 성과가 좋은 펀드로 계속 교체해주는 재간접펀드도 있다. 자산 배분이 돼 있는 상태에서 펀드 교체를 운용사가 알아서 해주는 방식이다. 일임 자문 형태의 랩 상품도 있다. 위험자산 비중에 따라 여러 종류의 랩이 있는 데 이 중 본인이 원하는 위험자산 비중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면 전문가가 자산 배분과 상품 선택을 통해 성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연금은 투자상품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관리를 잘해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다. 수십 년을 투자시장만 들여다보며 지낼 수도 없으므로, 자동화된 상품을 이용해야 한다. 연금이라는 배로 태평양이라는 노후를 건너기 위해서는, 투자라는 엔진에 자동화된 상품이라는 자동항법장치를 장착해야 한다.

김경록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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