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의 핵 협상 역사는 ‘기만’과 ‘불신’으로 점철돼 있다. 북·미 간 제1차 북핵 합의였던 1994년 ‘제네바 합의’는 2002년 북한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개발에 나서면서 결렬됐다. ‘제네바 합의’가 북한의 플루토늄 핵 개발 중지만을 언급하고 있는 점을 노린 북한의 ‘꼼수’였다. 2003년 4자회담·6자회담을 거쳐 2005년 합의된 ‘9·19 공동성명’은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라는 후속조치까지 이어졌지만, 2008년 12월 핵 검증 문제에 걸려 좌초했다.
이후에도 북한의 기만행위는 멈추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윤일 합의(Leap Day Deal)’로 알려진 2011년 ‘2·29 합의’가 절정이었다. 북한은 UEP 개발 중단과 핵·미사일 시험 유예를 미국과 합의했지만, 합의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같은 해 4월 13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를 통해 북한은 철저히 이득을 챙겼다. ‘제네바 합의’에 의거해 설립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경수로 건설기술과 장비를 얻었고, 2008년 냉각탑 폭파를 통해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얻어냈다. 2007년에는 6자회담 복귀를 카드로 삼아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동결됐던 자산 2500만 달러를 찾아갔다.
북핵 협상 20여 년의 역사는 북한이 애매한 문구에 합의한 뒤 ‘아전인수’ 해석을 통해 떼를 쓰는 협상 패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플루토늄 개발 중지에 합의한 뒤 UEP를 꺼내들고, UEP 개발 중단을 약속한 뒤에는 장거리 미사일을 카드로 활용하는 수법을 썼다. 최근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전자기기를 무력화하는 EMP탄까지 협상 목록에 추가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통미봉남(미국과 통하고 남한은 봉쇄한다)’에서부터 ‘벼랑 끝 전술’ ‘살라미 전술’까지 온갖 전술을 다 활용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내놓은 대남·대미 메시지도 북한이 과거 즐겨 사용해온 ‘이간계’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1950년 남한 침략을 앞두고 중국·소련의 경쟁심을 조장해 양국의 지지·원조를 얻어내기 위해 썼던 전술이기도 하다. 미국이 김 위원장이 제의한 남북대화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은 벌써 이간계에 당하는 모양새다. 남남갈등은 물론, 한·미 동맹마저도 흔들흔들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회담을 제의하면서 미국과도 충분히 협의했다고 했지만, 지난 1일 김 위원장 신년사에 “지켜보자”고 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하루 만에 “좋은 뉴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면서 회의적 시각을 드러냈다.
6·25전쟁 휴전 회담에 유엔군 수석대표로 참석했던 터너 조이 전 미국 제독은 1970년 저서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은 그들이 원할 때가 아니라, 자유의 승리를 위해 필요할 때만 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핵무기를 레버리지(지렛대)로 ‘통 큰’ 협상에 나서려는 북한이 원하는 때가 아닌가. 북한에 수차례 뒤통수를 맞았던 한국은 지금 ‘같은 말을 두 번 사지 않는다(Don’t Buy the Same Horse Twice)’는 외교가 격언의 의미를 곱씹고, 또 곱씹을 때다.
boyoung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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