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리고 있는 문화유산국민신탁 소장유물특별전. 우암 손병희(왼쪽부터)와 윤봉길 의사, 도산 안창호 선생의 초상이 보이고, 오른편의 ‘광복조국(光復祖國)’과 ‘존심양성(存心養性)’ 등 글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유묵이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대한제국선포 120주년 기념 ‘문화유산국민신탁’ 특별展
을사늑약 체결 덕수궁 중명전 유물 전시…역사적 의미 더 커 “식민사관 벗어나 당당해지자”
국민 후원으로 3년동안 모아 구한말~정부수립 근현대관련 개인 38명·기업 등 작품 기부
비갠 나무 멀리 떠서 푸른 묏부리에 나왔고(晴樹浮遠靑嶂出)
붉은 봄꽃 새벽 띠처럼 흰 구름에 흐른다.(春紅曉帶白雲流)
위의 글은 요즘 덕수궁 중명전에 가면 만나 볼 수 있는 순국열사 이준(李儁·1859~1907)이 옮겨 적은 원나라 왕몽(王蒙·1308~1385)의 ‘한적(閑適)’ 제3, 4구다.
이준 열사는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고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참석해 만국의 대표들에게 일본의 침략과 만행을 고발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와 열강들의 냉담한 태도에 통분한 나머지 순국하고 말았다.
위의 글은 최근 일본 고서화점에서 구입해 돌아온 것인데, 열사가 청운의 꿈을 안은 채 1896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早稻田)대 법과를 다닐 때 남긴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은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및 문화유산국민신탁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유산국민신탁 소장유물특별전 ‘국민의 빛으로 역사의 빛을 더하다’를 오는 3월 2일까지 덕수궁 중명전 2층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십시일반으로 일반 국민과 기업들의 후원으로 3년간 모은 150점의 유물 중 대한제국 등 근대 유물 40여 점을 공개하는 자리다. 특히 을사늑약이 행해진 역사적 장소인 중명전에서 작품을 전시해 역사적 의미와 장소적 의미를 함께 되새겨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
작품 기부에는 이길여 가천대 총장을 비롯해 개인 38명과 네이버, 스타벅스코리아 등의 기업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이나 기업이 작품 구입 비용을 제공하면 문화유산국민신탁이 그것으로 작품을 구매하는 형태다.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구한말 대한제국으로부터 출발해 독립운동 그리고 광복과 정부 수립 사이의 서화나 문서 등이 대부분이다. 조선조에서 고려, 삼국시대 등의 유물은 박물관에 풍부하게 보관돼 있지만 오히려 구한말에서 정부 수립에 이르는 근현대 관련 유물이 빈약하다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의 호소에 기부자들이 선뜻 응했다고 한다.
특별전에서는 고종 황제의 칙명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金九·1876~1949) 선생의 유묵과 백범일지 초판본, 이준 열사의 유묵, 헤이그 특사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러시아 공사 이범진의 유묵 등 사료적 가치가 높고 희귀한 다양한 유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김구 선생의 유작인 ‘광복조국(光復祖國)’은 그의 대표작으로, 해서(楷書) 대자(大字)의 현판(懸板)으로 중후한 필획과 안정된 결구가 돋보인다. 백범이 평생 염원하고 추구했던 ‘광복조국’을 표현하고 있어 가치가 더욱 높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 이준 열사의 유묵 앞에서 소장유물특별전의 의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종규 이사장은 이번 전시와 관련, “구한말은 대국 중국마저 무너질 정도로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이 치열했던 시기인데도 우리는 막연하게 조상들이 당파 싸움만 하고, 마지막 황제 고종마저 무능해서 망했다는 식민사관에 물들어 있다”며 “고종 황제와 이준 열사를 비롯, 당시 지도층 인물들의 유물을 보며 그 같은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에 보다 더 당당해지자는 취지로 전시를 기획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문화유산국민신탁은 2006년 3월에 제정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의 발효와 함께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계승해 미래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기 위해 2007년 3월에 창립해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