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로 내홍 격화
발표후 논란 불보듯
검찰 개입땐 후폭풍


법관 컴퓨터를 ‘강제 개봉’해 분석 중인 ‘사법부 블랙리스트’(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한 문건) 추가조사위원회 앞에 암초가 가득하다. 10일 현재 조사위가 조사 시작 두 달이 지나도록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사이 판사들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사법부발 ‘적폐청산’ 움직임이 가시화한다면, 법원 내홍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아울러 검찰이 사법부에 대한 수사에 나서면 법원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15일 출범한 조사위는 조사 시작 두 달이 지나도록 블랙리스트로 의심되는 문건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동의 없이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강제 개봉한 지는 16일이 지났다. 조사위 출범 당시 “시급히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고, 조속히 조사하겠다”는 민중기(서울고법 부장판사) 조사위 위원장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사이 판사들 간 갈등은 확대일로다. 법원 내부 게시판에는 ‘해당 컴퓨터가 공용물인 만큼 분석은 해당자 동의 없이 가능하다’는 의견과 ‘컴퓨터 강제 개봉은 헌법상 프라이버시권 침해, 형법상 비밀 침해 소지가 크다’는 시각이 맞부딪히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법관들의 익명 게시판에는 컴퓨터 개봉을 반대한 동료 판사들을 향해 수준 이하의 욕설을 한 글도 쇄도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우리 일은 아니지만, 법관 권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조사 결과 발표 이후가 더 문제라는 분석이 많다. 조사위가 “블랙리스트 문건이 있다”고 발표하면, 사법부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상상을 초월하는 파장이 벌어질 수 있다. 또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일들에 대한 과거사 조사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과거 잘못이 있다고 밝혀놓고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을 생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대법원 차원에서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적폐청산에 나선다면, 무색무취한 대다수 판사가 동의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문건을 블랙리스트로 볼 수 있을지부터 논란거리다. 조사위가 무리하게 블랙리스트로 칭할 경우 내부 반발이 커질 수 있다. 피해자 찾기도 난제다. 가능성은 작지만, 조사위가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발표할 때도 사태가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지난해 4월 이 의혹을 조사한 진상조사위원회가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을 추단케 하는 어떤 정황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무리하게 조사를 진행했다는 ‘책임론’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검찰이 사상 최초로 사법부를 겨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한 고발 건을 검토 중인 검찰은 “원칙대로 한다”는 입장이다. 범죄 혐의가 없다면 수사에 나설 이유가 없지만, 관련된 의혹이 커지면 팔짱만 끼고 있지 않겠다는 태도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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