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담
진창수 세종硏 소장
양운철 세종硏 부소장
정성장 세종硏 통일전략연구실장
백학순 세종硏 수석연구위원
우정엽 세종硏 연구위원
사회 : 박민 정치부장
2년 이상 얼어붙어 있던 남북관계가 새해 들어 급속하게 해빙 무드를 타고 있다.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는 북한 선수단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넘어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군사당국회담 및 고위급 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신년사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는 남북 대화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로 이어질 가능성에 인식을 같이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선언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한·미 정상 통화로 이어진 한반도 외교·안보 정세 변화의 배경과 전망을 진단해보았다. 긴급 좌담은 세종연구소의 진창수 소장을 비롯, 관련 분야 전문가 5명이 참석한 가운데 10일 오후 문화일보 편집국에서 2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됐다.
―최근 이뤄진 남북관계의 급격한 변화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성장 실장 =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선언하고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응한 것은 우선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 고위급 회담의 의제가 북한 선수단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국한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긴장 해소를 위한 군사당국회담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각 분야 고위급 회담 개최로까지 나아간 것은 김 위원장의 결단이 반영된 측면이 있다. 이는 김 위원장의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향후 남북 관계 개선과 관련해 주목된다. 물론 김 위원장의 이 같은 결정에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북한 정유제품의 80∼90%가 차단되는 등의 상황에서 결국 북한이 제재 완화를 위해 대외적으로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고, 남한의 손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백학순 수석 =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 간 평화정착을 위해 더 많은 대화와 협력을 이끌어내겠다고 했는데 이건 올바른 선택이라고 본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을 연계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고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과 대화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거듭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연계론을 전면에 내세우면 남북 관계 개선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진창수 소장 = 문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 남북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을 감안한 현실적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에 대한 국내외의 우려를 불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개선돼야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동시에 밝힘으로써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국제사회에 맡기지 않고 우리의 능력과 의지로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북한은 대외의존도가 낮고 내핍체제에 익숙해 국제사회의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양운철 부소장 = 대북 제재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제재 때문에 한계에 도달해 대화에 나섰다고 보긴 어렵다. 북한이 대화에 나선 것은 전략적 선택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전략적 선택의 첫 번째 이유는 국면 전환이다. 핵 개발을 위한 시간을 벌고 제재 국면을 완화시키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평창올림픽에 참가해 한국 국민과 국제사회에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한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유도해내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려 했을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남북 대화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갖는 것은 경계할 필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이상 대화조차 하지 않았던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마련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런 차원에서 문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밝힌 남북관계에 대한 메시지는 의례적인 대북 제안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정엽 위원 =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대북 대화 제의나 ‘운전자론’ 등에 대해 그간 국내외에서 우려가 제기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은 중요한 변화를 보였다. 대통령 당선 전에는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기대’에 입각한 노선과 정책을 밝혀왔다면 이번 신년사에서는 ‘남북관계의 현실적 제약’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음을 보여줬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신년사나 남북 고위급 회담을 보면서 북한이 아직 비핵화로 가는 대화를 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
―실제로 북한은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비핵화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만약 북한이 남북 대화 과정에서 미국과의 대화 중재를 요청하거나 미국에 핵 문제 논의를 위한 직접 대화를 제의할 경우 우리 정부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나.
△진 소장 = 어려운 문제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 앞서 우선 한국에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와 중단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은 중간에서 어떤 식으로든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중단이나 축소를 통해 대화를 이끌어 내려 하면 미국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미 간 문제가 생기고 국제사회가 분열되면 북한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전략적 이익을 보는 것이다. 북한·중국·러시아와 한국·미국·일본이 대치해 비핵화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북한은 전략적 이득을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미국이 줄곧 강조해왔던 ‘비핵화를 전제한 북한과의 대화’ 방침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나.
△우 연구위원 =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 입장을 밝히면서 동시에 핵탄두와 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대량생산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평창올림픽 참가에 주목하지만 두 가지 발언에 경중을 달리할 근거가 없다. 결국 올림픽이 끝난 이후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할 가능성은 열려있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인식 하에서 문 대통령이 그런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본다.
△정 실장 = 우리 정부는 지난해에도 적십자회담, 군사당국회담을 제안했다. 기본적으로 국제사회의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한 낮은 수준의 대화는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을 그동안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정상회담은 다른 문제다. 북한이 기본적으로 비핵화 문제에 합의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최소한 북핵이나 미사일의 도발을 중단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 남북관계가 해결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국제사회를 의식한 것이고 ‘남북관계가 해결돼야 북핵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한 부분은 북한에 던진 메시지라고 보면 된다. 앞서 보수 정권에서는 앞부분까지만 얘기했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개선이 곧 비핵화를 위한 남북 대화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얘기했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남북 관계에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번 신년사 내용을 분석해보면 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과거 대선 후보 시절이나 정권 초기에 비해 균형감을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균형감을 바탕으로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합의한 관계 개선을 추진한다면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남북 고위급 회담 합의문에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한다고 적시돼있는데 어떤 분야가 가능한가.
△백 수석 =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도 중요하기 때문에 남북 간 군사회담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 게 필요하다. 남북 간 핫라인을 개설하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다. 군사 회담을 해나가면 남북 긴장이 상당히 완화될 수 있다. 경제적인 협력도 할 수 있는데 국제사회의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민단체나 국제 비정부기구(NGO)가 인도주의적인 협력부터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가장 최종적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대화의 급을 계속 높여서 궁극적으로는 정상회담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정상회담을 하려면 여건이 조성돼야 하고 어느 정도 성과도 담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실장 = 막상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4월이 되면 남북관계가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들어설 것이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재개될 것이고 이에 북한이 강하게 반발할 수 있다. 9월 9일은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이기 때문에 북한이 또 핵이나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고 남북관계가 경색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기대를 걸 수 있는 대목은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한 것이다. 선수단과 응원단 등 대회 관계자만 오면 하나의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이 높지만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등 최고위급 인사들이 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최 부위원장이 오면 청와대를 예방할 가능성이 높다. 그때 문 대통령이 북한에 화해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평창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남북대화가 지속될 수 있다. 즉 고위급 인사 파견을 우리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가 남북 관계 개선의 관건이 될 것이다. 북한이 고위급 인사를 파견했으니 우리도 답방 차원에서 고위급 인사를 평양에 파견해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6·15 남북 공동선언 기념일을 전후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수도 있다. 물론 북한에 비핵화에 대한 확답을 받아낸다면 최상이지만 그것이 어려울 경우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실험 중단이나 개발 동결 합의를 이끌어 내도 엄청난 성과다.
―핵 개발 중단이나 동결을 이끌어 내려면 북한으로부터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이나 폐기를 포함 한·미 동맹에 치명적 손상을 초래하는 요구를 받을 수 있다.
△정 실장 = 북한이 확실히 핵을 동결한다고 하면 한·미 연합군사훈련도 중단할 수 있는데 물론 사전에 한·미 간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가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서 테스트해볼 필요가 있다. 비핵화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에 대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대화를 접고 북한이 타협할 때까지 제재를 가해야 한다.
―북한 고위급 인사의 방문 가능성은 높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 측 고위급 인사들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 가능한가.
△정 실장 = 우리 정부가 3월에 답방 형식으로 보내면 된다. 북한은 어차피 청와대와의 대화 채널을 요구하니까 통일부 장관, 국가안보실장 등이 오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백 수석 = 북한은 한국을 대화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미국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두 가지 요구를 모두 하고 있다. 이 문제는 6자회담이란 틀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한국이 포함된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북한과 미국이 직접 대화를 할 수도 있고 한국은 당연히 대화에서 배제되지 않을 수 있다. 한국은 북 핵·미사일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고, 북한도 서울을 통해 워싱턴을 가는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에 남북대화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6자회담 재개가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정 실장 =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 대화에는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로 입장이 강경하기 때문에 북한과 미국이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입장 조정을 위해 한국이 나설 수밖에 없다. 비핵화 과정을 세분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할 경우, 핵·미사일 개발을 동결할 경우, 폐기로 나아갈 경우 등 각 단계별로 한국과 국제사회가 어떻게 대응할지 구체적인 방안을 갖고 미국과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한국이 주도해서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 내야 한다. 물론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를 끝내 거부한다면 한국이 독자적인 핵을 보유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북·미 갈등을 완화할 수도 있다. 한국이 핵을 갖게 되면 북한은 남한을 상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진 소장 = 어떤 방식으로든 북·미 대화는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나름대로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그 결과로 북·미 대화가 이뤄질 수 있고 또 하나의 타협점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어떤 형태로든 타협할 수 있다. 다양한 옵션을 염두에 두고 북·미 대화에 대한 우리의 모범답안을 만들어서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한·일간 위안부 합의가 잘못됐다고 규정하면서도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정쩡한 결론이라는 평가도 있다.
△진 소장 = 국제관계와 국내여론을 생각해 중간 타협책을 모색했는데 이 방안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제 국내에서는 일부 위안부 할머니들이 합의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고. 국제적으로 일본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니 그것을 관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얘기했듯 역사문제와 안보·경제협력 문제를 나눠 투 트랙으로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다만 일본이 과거와 달리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논의를 진전할 수 없다는 원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해결 방안은 문 대통령이 일본에 가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만나던지, 아베 총리, 아키히토(明仁) 일왕을 한국으로 초청해 상호 신뢰를 쌓고 우리 입장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진 소장 = 일본은 합의를 지킬 것을 계속 요구하겠지만 정부는 일본의 자발적 사과 등을 요구하는 만큼 대응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것이다. 문제는 10억 엔인데 이 문제를 일본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예치 상대로 가만두면 되는데 피해 할머니들이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정리 = 박효목 기자 soarup6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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