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베이징 특파원

지난해 12월 말 사적 공부 모임에 참석했다. 우리나라 언론인 출신으로 중국의 한 대학에서 오랫동안 북·중 관계 등을 연구해온 학자가 북핵 문제가 악화할 경우 중국의 선택지는 무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마침 한반도 관련 중국 전문가들이 런민르바오(人民日報)의 자매지인 환추스바오(環球時報) 주최 세미나에 얼마 전 참석해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발언을 쏟아냈던 때였다. 올해 3월 안에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북한은 시한폭탄’ ‘중국 동북지역의 (방어적) 전쟁 동원령 필요’ ‘핵 분쟁, 방사성 낙진 대비’ 등의 주장도 이어졌다. 중국 내 한반도 위기론이 얼마나 심각한지, 북·중 관계 악화 국면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공부 모임에서 이 학자는 중국 관련 북핵 시나리오 4가지를 설명했다. 첫째는 극적인 평화 협상으로 북핵 문제가 해결돼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에 나서는 것이다. 둘째는 미·중 모두 실기해 북한이 실질적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다. 셋째는 미·중이 협력해 북한 정권을 붕괴시킨 뒤 통일 한국을 놓고 이익 배분을 하는 시나리오다. 넷째는 중국이 북한을 보호하고 나서 신냉전이 형성되는 구도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첫째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작다는 게 이 학자의 설명이다. 중·미 모두 북핵을 용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셋째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결국 한반도에 전쟁 암운이 짙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학자는 북한 신년사에서 유화적인 발언이 나올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 이후의 상황 전개는 이 학자의 예측대로 진행되고 있다. 9일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대규모 평창동계올림픽 대표단 참가와 남북 군사당국 회담 개최 등이 합의됐다. 하지만 비핵화 대화 재개 얘기가 나오자 북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비핵화 문제를 놓고 한국과는 협상하지 않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이 학자는 전화 통화에서 “군사회담이 북·미 간 비핵화 회담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핵 위기의 본질은 바뀌지 않아 올림픽 이후 전쟁 위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북한이 미국의 지상 목표인 핵 포기를 전제로 북·미 회담에 나서지 않으면 미국의 대북 압박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에 따라 대북 원유 중단 등 중국 역할론이 재등장할 것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몇 년 전 발간된 ‘기로에 선 북·중 관계’에서 추수룽(楚樹龍) 중국 칭화(淸華)대 교수는 “중국의 대북 정책은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13년 2월 있었던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며 “북핵은 중국의 안보 이익을 침해하기 때문에 중국은 절대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은 전면적인 대북 제재 동참을 항상 강조하면서도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원유 공급 대폭 축소나 중단을 거부하고 있다. 또 북·중 밀무역을 사실상 방치 또는 묵인하는 정황 때문에 중국에 대한 서방세계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완벽해야 북한을 비핵화 협상장으로 더 빨리 끌어낼 수 있다는 한 한국인 학자의 충고를 중국은 새겨들어야 한다.

utopian21@
김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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