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개헌(改憲)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밝힘으로써 개헌 논란은 더 가열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30년이 지난 옛 헌법으로는 국민의 뜻을 따라갈 수 없다”면서 국민 주권 강화, 기본권 확대, 지방분권 등의 방향을 제시하고 4년 중임제 개헌을 선호한다고도 했다. 6·1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실시를 위해 3월 중 개헌안 발의, 이를 위해 2월 말까지의 국회 합의 등 일정까지 제시하고, 정부 주도의 ‘국민개헌안’도 준비하겠다고 했다. 이런 입장은 일견 타당하고, 진정성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어떤 개헌을 할 것인지, 지금 당장 해야 할 만큼 절박한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중요하다. 이런 근원적 문제들을 얼버무린 채 특정 일정에 맞춰 밀어붙인다면 민주적 절차에 따른 개헌은 불가능하고, 무리한 방식으로 성공하더라도 ‘잘못된 개헌’이 될 수 있다. 지금 여권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개헌 논의들을 보면 이런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듯이 헌법은 국가 정체성과 국가 운영의 틀을 규정하는 최고 규범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국체가 흔들려선 안 된다. 이것을 바꾸면 제헌(制憲)이고 혁명이다. 1987년의 민주항쟁이 지향했던 바는 현행 헌법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는 표현에다 제4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신설했다.

문 대통령이 개헌 구상을 밝히면서 국회 합의 땐 ‘최대한 넓은 범위의 개헌’, 정부 발의 땐 ‘최소한의 개헌’ 입장을 밝히면서 ‘최소 분모’로 지방분권과 기본권 확대를 제시한 것은 이런 우려를 더 키운다. 권력구조 개편을 후순위로 미뤘기 때문이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11일 개헌의 가장 큰 이유는 ‘권력구조 개편’이라면서 문 대통령의 인식에 심각한 우려를 제기한 것은 당연하다. 특히 진보 성향 인사들이 주도한 국회 헌법개정특위 자문위의 개헌 초안을 보면 여권의 지향을 짐작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자는 주장이지만, 사회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 등 변형된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 때문에 1987년 헌법이 자유민주주의 강화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강화라는 확고한 공감이 출발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좌편향 포퓰리즘의 헌법화’ 시도라는 의심을 받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 개헌을 밀어붙이다 흐지부지된 것처럼 ‘아니면 말고’식으로 흘러서도 안 된다. 더 차분하고 진정성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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